- [팬픽션] 얼음성 ~ 후일담 ~ 1 (수정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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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8-11 17:19:24
글: 세크레트
그림: 유기농귤
1편 링크: http://cyphers.nexon.com/cyphers/article/art/topics/1872928
Cyphers Fanfiction Project, 얼음성
~ 후일담 ~
샬럿이 돌아가고도 며칠이 지난 날, 흐렸던 지난 시간이 무색하게 하루 종일 뙤약볕이 내리쬐던 날, 노을과 함께 어스름이 찾아올 무렵. 서녘에 닿은 태양은 넘어가기 직전의 발길을 질질 끌며 런던 한 구석, 골목길에 위치한 작은 서점 안쪽에 긴 그림자를 드리웠다. 자연스럽고 평화롭게 흘러가는 시간 속의 평범했던 풍광, 언제나와 같이 그 속에 흐르는 평온한 일상. 여느 때의 풍경과 달랐던 점은, 서점 안에 드리운 그림자의 갯수가 전 날보다, 또 그 전 날보다 하나 더 많았다는 것뿐이었다.
사람의 기척이 느껴지지 않는 고즈넉한 서점 안, 늦가을, 풀벌레들의 마지막 합창이 주황색 태양빛과 그림자 기둥들 사이에 울려퍼졌다. 성큼성큼 키가 큰 나무 책장들은 석양 빛을 받아 붉은 바다, 그 속에 우뚝 선 숲처럼 작은 서점 안을 빼곡하게 메웠다. 그 숲의 한가운데 우두커니 서 있는 형체 하나, 책장보다 작은 그림자 하나 근처에서는 풀벌레 반주 소리에 무관하게, 사락사락 책장 넘어가는 소리가 났다.
정적이지만 고요하지는 않았던 무대의 한켠에서, 달칵 하는 소리와 함께 움직임이 일었다. 서점 안쪽의 작은 문을 열고 후드를 뒤집어쓴 키 큰 청년이 걸어 나왔다. 여느 날의 일상이 늘 그랬었던 것처럼, 루이스는 자연스럽게 기지개를 펴고 굳어 있던 팔다리를 풀며 서점 안팎을 휙 둘러보았다.
서점 한가운데 쪽으로 고개를 돌린 루이스의 시선이 문득 우뚝, 하고 다른 눈 두 개와 만나며 멈춰섰다. 맹랑한 듯 날카롭고, 투명하게 맑은 순수한 눈빛이, 루이스를 마주했다. 그것도 당연스럽게 그의 시선이 조금 아래로 향한 상태에서.
서점 한가운데, 루이스의 어깨까지 오는 책장들 사이에, 방울무늬가 그려진 눈빛 원피스를 입고, 방울 머리핀으로 머리를 양 갈래로 묶은 키 작은 소녀가 고개를 돌려 루이스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째려보듯 당돌한 아이의 눈빛에 오히려 루이스가 살짝 당황하며 던지듯 의례적인 말을 내뱉았다.
"무엇을 도와드릴..."
루이스가 채 말을 끝맺기도 전에 소녀는 관심도 없다는 듯이 루이스에게서 고개를 휙 돌려 버리고 들고 있던 책을 탁 소리 나게 양 손으로 덮어 버렸다. 오도카니 선 채로 루이스에게 애써 신경을 끄려고 보이는, 의중을 알 수 없는 소녀의 행동에 루이스는 잠시간 얼이 빠진 듯 가만히 서 있었다.
많아야 열 살 남짓 되어 보이는 앳된 아이는 팔을 가지런히 펴서 책을 무릎쯤에 양 손으로 들고는, 앞에 있는 책장 한 칸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주황색 물이 살포시 든 소녀의 볼 위에 드리운 엷은 그림자가, 살랑살랑 흔들리며 잠시간 풀벌레 반주에 맞추어 움직였다.
그런 소녀의 무신경함에 영문을 모르고 루이스가 돌아서려던 찰나,
"저기, 물어볼 게 있어."
앳되지만 차분한 목소리와, 잔잔한 어조로 소녀가 루이스에게 말을 걸어왔다.
재차 뒤돌아선 루이스의 시선이, 유별나게 슬픈 빛이 밝은 소녀의 두 눈, 석양이 넘실대는 붉은 바다, 속에 헤엄치는 그림자의 물고기, 그리고 그 안에 빛나던 별 두 개에 가서 박혔다.
"얼마 전에, 샬럿이 여기에 왔었지?"
석양 빛에 휩싸여 흡사 불타는 것처럼 붉게 물든 서점 안이었지만, 루이스를 바라보며 말을 건네는 아이의 어조는 조곤했다. 마치 안부 인사를 건네듯 묻는 아이의 물음에, 물론 샬럿과의 만남에 켕길 것은 하나도 없었지만, 처음 만난 사람, 게다가 상대가 아이였기에 루이스는 말 수를 줄이며 조심스레 대답했다.
"응. 그런데, 너는 누구니?"
대답을 들은 아이의 눈가가 미묘하게 움찔하며, 한쪽 눈썹과 눈을 살짝 찌푸리고 곤란하단 표정을 지어 보였다. 비밀을 찔린 아이가 지을 표정을 지으며, 아이는 루이스에게서 눈을 돌려 잠시 생각하는 듯하다 다시 홱 하니 루이스 쪽으로 돌아서며 말했다.
"마를렌 르 블랑. 샬럿의.... 언니야."
쏘아붙이듯 당당하게 말한 자기 이름과 대조적으로, 아이가 나중에 말한 몇 단어들은 목소리도 기세도 확 움츠러든 느낌이었다.
샬럿의 언니라고 말 한 게, 무언가 말하고 나서도 영 개운치 않은 느낌이었는지, 마를렌은 말을 얼버무리고는 또 서점 어딘가를 바라보며 양 갈래로 묶은 머리 한 쪽을 만지작거리며 루이스의 시선을 피했다.
그런 마를렌을 루이스는 잠시 멍한 표정을 지으며 바라보다가, 이내 싱긋 웃었다. 아이 같지 않은 느낌을 주기도 했지만, 실상은 자기 마음을 숨기지 못하는 아이의 모습을, 루이스는 어렵지 않게 꿰뚫어볼 수 있었다.
어른처럼 대우받고 싶으면서도, 아이의 태를 벗어나지 못한 아이, 조금은 성숙하지만 여물지는 않은 아이,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서점의 한중간에 선 마를렌을 루이스는 지긋이 바라봤다. 그렇게 마를렌을 바라보던 루이스의 시선과 마를렌의 눈이 다시 마주쳤을 때, 우연인지, 바깥에서 들려오던 풀벌레 소리가 딱 멈추었다.
부자연스럽게 마주친 눈길을 다시 회피하려 이미 고개를 반쯤 돌린 마를렌에게 루이스는,
"그렇구나. 그런데 여긴 어떤 일로 왔니? 책을 읽으러 온 것 같진 않은데."
마를렌 쪽으로 두 발짝 정도 조심스레 걸음을 딛으며, 아이의 눈높이에 맞게 조금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아까보다 조금 높이가 낮아진 루이스의 후드 안을, 주홍색의 태양빛이 환하게 비추었다.
샬럿을 만나며 되찾았던 따스한 미소가, 태양빛을 받아 더욱 밝아진 채로, 조금 각진 얼굴에 시원한 인상을 가진 청년이 마를렌을 마주했다.
그런 루이스를 경계하듯 마를렌은 들고 있던 책으로 얼굴을 살짝 가리며, 두어 걸음 정도 뒤로, 하지만 그보다 더는 가지 않고 루이스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평평한 신발을 신은 발뒷꿈치를 살짝 든 채로, 멈칫멈칫하는 아이의 두 볼은 아까와 또 조금 다르게, 선홍색 빛이 살짝 더해진 것처럼 보였다.
약간의 부끄러움을 간직한 채로, 마를렌은 책 뒤에 얼굴을 가리면서도 루이스의 얼굴을 똑바로 직시했다.
루이스를 빤히 바라보는 두 눈동자를 굴리며, 루이스의 얼굴에 뭔가 특별한 게 있기라도 한 듯이, 아이는 잠시간 아무 말도 하려 하지 않고 루이스의 얼굴만 구석구석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루이스의 환한 얼굴에 마를렌이 느꼈던 감정들, 부끄러움, 따뜻함이 차례차례로 아이의 얼굴에 비쳤다가, 왜인지 이내 쓸쓸한 낯빛을 지어 보였다.
"....샬럿이랑 많이 닮았네, 그 얼굴."
툴툴대는 표정에, 얼굴에 약간의 쓸쓸함을 간직한 채 썩 개운하지는 않은 어조로 마를렌은 잠시간의 침묵 끝에 입을 열었다. 여전히 루이스를 빤히 바라보는 채로, 아이는 얼굴을 가리고 있던 책을 책장 하나에 도로 탁 밀어넣었다. 예상 외의 대답에, 아까까지 미소를 지어 보이던 루이스의 얼굴에도 약간 놀란 빛이 피어났다. 마를렌은 볼을 살짝 부풀리며, 눈을 살짝 찡그리며 못마땅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고는, 다시 태연해 보이려는 듯 표정을 고치고 혼잣말하듯 말들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나 참. 샬럿도 집을 나가서 오히려 표정이 더 밝아지고 말이야.”
잠시 뜸을 들이는 마를렌의 말 사이로, 아주 잠시, 아이의 얼굴에 살짝 울먹이는 빛이, 스쳐 지나갔을지도 모른다고 루이스는 생각했다.
“나하고 있을 때는 한 번도 그렇게 환하게 웃은 적이 없었으면서… “
쓸쓸한 말줄임표를 끝으로, 침울함을 숨기려고 눈과 입가에 힘을 주던 아이의 얼굴이 본래의 모습으로 풀어졌다. 물기어린 푸른 보석 같은, 기품 서린 쓸쓸함이 아이의 얼굴에서 피어났다. 울먹거리는 듯 끝을 흐렸던 마를렌의 말들에 이끌려, 루이스도 자연스레 숙연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아까보다 조금 더 기운 태양, 조금 더 긴 그림자를 배경으로, 이제는 루이스도 이유를 짐작할 수 있는 무게가, 서점 안을 내리눌렀다. 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라, 무슨 말을 해야 할지를 몰라 흐르는 침묵이 서점 안을 가득 메웠다.
아이의 말을 통해 알 수 있었던 허전함, 상실감, 그리고 아이가 샬럿에게 느끼고 있는 각별함. 이 모든 감정들을 느끼고, 또 알았다면, 루이스가 알아야 할 것은 이제 단 한 가지만이 남아 있었다.
아이는, 왜, 무엇 때문에, 무슨 답을 찾고자, 이 곳에 온 것일까.
마를렌의 마음을 알기에 필요한 단 한 가지 열쇠, 그것에 접근하는 데에, 루이스는 그리 오랜 시간을 기다리지 않아도 되었다
“있잖아,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
처음에 마를렌이 던졌던 질문의 어조처럼, 아이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하지만 차분했던 건, 목소리뿐이라는 걸 루이스는 이번엔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고요 속의 종소리처럼, 울리는 마를렌의 마지막 물음이 루이스를 향했다.
“외롭다는 건, 어떤 느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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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도 계획대로라면, 한 2주 전에 완성했어야 할 글인데, 정말 글 쓰는 속도가 너무 느리다는 걸 자주 느끼네요.
얼음성 본편을 쓰기 전에 손 풀기 정도로 써 보려고 했던 글이 이렇게 길어질 줄은 몰랐습니다.
확실히 요새 슬럼프는 슬럼프인지.. 글이 도저히 이어지질 않네요.
글을 좀 빨리 쓸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단순히 생각을 늘어놓는 식으로 글을 쓰면 좀 더 빨리 쓸 수는 있겠지만,
그렇게 쓰면 작위적인 느낌이 많이 나서 최대한 배제하려고 하는데..
최근에는 그렇게라도 써서 글 쓰는 속도를 좀 끌어올려야 되는 게 아닌가 싶네요.
제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글이, 잔잔한 스토리라인을 따라서 등장 인물들의 성격을 따라 찬찬히 전개되는 글인데
그런 글을 쓰기에 아직 필력이 많이 부족한 건 아닌가 생각되기도 하고...
원래라면 뒤에 내용이 더 이어지는 글이지만, (신분이 군인이라)
앞으로 당분간 뒷 내용을 쓸 수가 없는 상황이 되어버려서
일단 완성된 부분까지 올려보자~ 라고 생각하고 올려봅니다.
가진 욕심만큼만 글을 쓸 수 있으면 지금보다 한 백 배는 글을 잘 쓸 수 있을텐데,
완성 못 하고 또 몇 주간을 기다려야 된다는 게 맘아프네요. ㅋㅋ
부족한 글이지만 단 한 분의 독자라도 이 글을 재밌게 읽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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