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편] 그레이 데스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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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28 22:51:23
아버지가 기어코 벨져의 제명을 공식 선언하셨다. 아침부터 기자들과 언론인들을 모으기 시작하시더니, 오늘 오후 세시경 공식 발표 하셨다. 검술 기사도의 지엄한 위상을 가지고 있는 우리 홀든가의 형제 중 한명의 이름을 제외하시다니…. 속으론 설마 제외를 하시겠거니 했지만 막상 일이 닥치니 많이 놀랐다. 허나 나는 장남으로써 냉정함을 잃지 말아야 했다.
애써 담담한 표정으로 아버지 뒤에 서서 주위를 둘러봤다. 이글 녀석은 아직도 돌아오지 않았다. 벨져의 제명으로 뭔가 느낀 바 있을 터…. 돌아오건 돌아오지 않건 아버지는 애시당초 막내 이글을 아끼셨던 분이기에 언급을 하지 않으셨다.
돌아와 벨져의 방문을 조심스레 열어보았다. 오랫동안 주인의 온기가 닿지 않은 방은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창밖엔 희미한 달빛이 회색빛 방을 비추며 흔들리고 있었다. 달빛을 따라 벽을 보니 어릴 적 첫 무도회에 갔을 때 아버지가 가문 장인들에게 부탁해 만든 무도회 가면이 초라하게 붙어있었다…. 가끔씩 지나가다 보면 가면을 쓰곤 거울 무덤덤하게 보고 있던 벨져를 보았다. 아마 자신의 표정을 들키기 싫어서였겠지….
작은 문 틈새로 달빛에 비춘 가면을 지켜보다 문뜩 과거 생각이 났다. 그 옛날 우리는 왜 그렇게 서로를 못 잡아먹어 안달이었을까? 아니, 그 감정은 분명 벨져의 일방적인 질투심이었겠지. 차라리 이글이 말한
“작은형이 큰형이 되고 큰형이 작은형이 됬으면 성격들이 딱 맞았을 거 같아!”
라는 터무니없는 말도 지금은 왠지 아프게 닿는다. 아무리 생각해도 난 벨져를 이해할 수 없다. 이 오만방자한 것. 왜 그렇게 나를 질투하고 시기해서 기회를 날려먹었던 것이냐. 바보같이. 검술의 기교는 분명 벨져 네가 더 뛰어났건만. 조금만 기다리지 그랬어.
얼마 전 네놈의 소식을 들었다. 인형실 작전에서 앤지를 죽일뻔한 것도 모자라 이젠 그들을 처단하고 있다더군. 그게 네놈의 신념이냐 벨져? 지엄한 가문의 담벼락을 나가서 하는짓이 고작 쓸데없이 칼에 피를 묻히는 짓이라니. 동생들이라곤 왜 하나같이 다 이 모양인지.
…차라리 내가 막내였으면 이렇게까진 안됐을까.
오랜만입니다. 일년만에 글 쓰는거 같아요~~[2차 설정집]은 곧 돌아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