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쌍창] 시험보는 쌍창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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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4-13 13:36:13
*추천과 댓글은 언제나 감사합니다:D!
*이번 글도 재밌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오늘이 드렉슬러가 방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은 지 3일째였다. 이쯤되니 로라스는 걱정 아닌 걱정이 되었다.
사관학교 졸업심사를 앞둔 3일 전, 드렉슬러는 방에서 공부하고 있던 로라스를 찾아와서 필기노트를 보여 달라고 간곡히 부탁했다. 사관학교 졸업심사는 그동안 배운 이론을 중점으로 한 필기시험과 다양한 전투상황에서 대인능력을 시험해보는 실기시험으로 나눠지는데, 드렉슬러가 가장 약한 분야가 바로 이론 파트-필기시험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수업시간마다 엎드려 잠을 자거나 턱을 괴고 끄적끄적 낙서만 하던 그였다. 그 모습을 옆에서 봐온 로라스는 단호히 거절했다.
-그렇게 걱정할 거면 진즉에 수업을 열심히 듣지 그랬나.
그러면서 드렉슬러로부터 등을 돌리고 다시 공부하려는데, 드렉슬러는 그런 로라스 옆에 서서 친구 한 명 구제해달라며 떼를 쓰는 건지, 부탁을 하는 건지 모를 정도로 침을 튀겨가며 열변을 토했다. 모공마다 드렉슬러의 침이 유성창마냥 박힐 듯하여, 한 손으로는 드렉슬러의 침으로부터 얼굴을 가리고, 다른 한손으로는 마저 외우던 공식을 펜으로 적어 내려갔다. 쉴 새 없이 줄줄이 말을 꺼내던 드렉슬러는 자신을 외면하는 로라스에게 친구가 필기노트 한 번 보여 달라는데 너무 야박하다며 감정호소법을 시전했다. 그에 대해 로라스는 시험은 누구에게나 공정해야 한다며 이성(理性)철벽법으로 대응했다. 눈에는 눈, 궁에는 궁이랬던가. 로라스의 이성적 대응법에 드렉슬러도 이성적으로 대꾸했다.
-알베르토 자네는 노트 한 번 훑고 시험 봐도 만점은 따놓은 트루퍼잖나?
-그야 그렇지.
-자네도 알다시피, 내가 그 노트를 열 번이고 본다고 해서 만점 받을 리는 없단 말이지. 그러니 자네를 위협할 일은 없을 거야.
-지금 그 말은 졸업하지 않겠다는 말처럼 들리네만.
-…과락만 면하자, 과락만.
결국 이성은 버리고 다시 감정으로 호소하는 드렉슬러였다. 더불어 노트를 빌려주는 조건으로 로라스의 창을 세련되게 개조해줄 거라는 공약도 내세웠다. 그 공약의 효과는 대단했다. 그렇게 부탁하고, 어르고, 협박해도 내어주지 않았던 필기노트였건만, 로라스는 공약을 듣자마자 노트를 드렉슬러의 품에 던지다시피 건네주었다. 거절했다간 더 해괴한 조건을 걸 것이 뻔했다. 그러니 그 전에 빨리 보내는 것이 서로에게 도움 되는 일이었다. 그렇게 드렉슬러는 로라스의 필기노트를 챙겨가며 곧 갖다주겠노라 다짐하고 방으로 돌아갔다. 그 말마따나 빠르면 자기 전에, 늦어야 하루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3일이 지난 지금까지 드렉슬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정말 마음먹고 공부를 시작한 거라고 생각하기엔… 지금 당장 세계가 종말한다고 해도 그만한 무서운 생각도 없을 터였다. 공부와는 담을 쌓은 사람이 바로 드렉슬러였다. 그런 그가 공부를 하고 있을 수도 있었다. 다른 시험도 아닌 ‘졸업심사시험’이니까.
졸업심사시험에 합격하면 그와 동시에 황실 호위대의 일원이 된다. 그만큼 사관학교 졸업심사시험은 꽤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그렇기에 매년 졸업심사를 앞둔 이맘 때 즈음이면 자살하는 사관생도들이 속출했다. 시험에 대한 압박감도 압박감이겠지만, 황실 호위대의 일원이 되어 가문의 위신(威信)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중압감도 적용된 것이리라. 올해는 아직까지 그런 일이 생기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드렉슬러가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할 리 만무했다. 적어도 그를 옆에서 봐 온 로라스는 그렇게 생각했다. 다른 이들처럼 시험에 대한 부담감이 많다면 많았지, 부담감 때문에 극단적인 선택을 할 정도로 마음이 약한 편이 아니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만약 그가 자살을 결심했다면, 자살하기 전에 자기가 들어갈 관의 도면을 그리고, 제작하여 완성한 다음에 자살할 사람이었다. 하지만 로라스는 드렉슬러로부터 어디에 묻어달라는 부탁도 들은 적이 없었다.
그러니, 걱정 아닌 걱정이 되는 것이었다.
“다리오. 자네 방에 있나?”
드렉슬러의 방문 앞에서 노크를 하며 물어도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한 번 더 노크를 해도 마찬가지였다. 로라스는 문고리를 살짝 잡아 돌렸다. 문고리가 돌아가며 문이 철컥, 열렸다.
“들어가보겠-.”
열린 문틈 사이로 고개를 먼저 들이밀며 조심스레 말하던 로라스는 방을 들여다보다가 말끝을 흐렸다. 분명 제 눈에 보이는 것은 책상에 앉아 무언가 몰두하고 있는 드렉슬러의 뒷모습이었다. 저대로 죽은 건가, 자는 건가 싶어 조심스레 다가가며 슬쩍 말을 꺼냈다.
“…다리오. 내 노트 이제 그만 돌려주지 않겠나.”
그의 목소리에 가만히 숙였던 드렉슬러의 고개가 들렸다. 죽은 것도, 자고 있는 건 아닌 모양이었다. 뒤에서 들리는 로라스의 목소리에, 드렉슬러는 뒤를 돌아보며 친구를 살갑게 반겨주었다.
“여어, 노트는 잘 챙겨뒀지.”
잘 봤다는 말도 아닌 잘 챙겨뒀다는 말과 함께 서랍 속에서 노트를 꺼내는 드렉슬러였다. 그럼 지금 그가 보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싶어, 노트를 건네받는 것과 동시에 드렉슬러의 어깨 너머 책상을 힐끗 쳐다보았다. 그것은 분명 안경이었다.
“…안경은 왜 분해하고 있었나?”
로라스는 안경다리와 안경알, 작은 나사들이 분해된 것을 보며 물었다. 드렉슬러는 어깨를 으쓱였다.
“천재의 활약을 잘 보라고. 역사의 한 획을 그을 만한 위대한 발명품을 만들고 있으니 말야.”
그럼 그렇지. 그가 공부를 할 리 없었다. 역시나 싶은 생각에 로라스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옆구리에 노트를 끼고, 손을 주머니에 찔러넣고서 드렉슬러의 책상을 가만히 내려다보며 물었다.
“이번엔 무슨 발명품을 만드는 건가?”
“특수제작한 안경알에 깨알같이 글자를 새겨넣은 시험대비용 컨닝글래스라네!”
드렉슬러는 한손에는 안경알, 한손에는 조각칼을 들고서 그런 자신이 대견스러운 듯 당당하게 말했다. 로라스는 이마에 손을 짚고서 고개를 가만히 저었다. 시험의 압박감이 다른 방향으로 적용된 듯 했다.
“다리오…. 나라면 그걸 만들 시간에 책 한 번 더 들여다보겠네.”
“미리 사인이라도 받아두라고. 조만간 세상에서 제일가는 천재발명가가 탄생할 테니 말야.”
“차라리-,”
‘다시 태어나는 게 어떻겠냐’고 말을 하려던 로라스는 입을 다물고서 생각에 잠긴 얼굴로 드렉슬러가 만지작거리는 안경만 바라보았다. 조각칼로 안경알에 글자를 정성들여 새겨 넣던 드렉슬러는 잔소리꾼 로라스가 가만히 있자, 신경쓰여 물어보았다.
“무슨 생각을 그리 하나?”
“정말로 천재가 되고 싶다면 다시 태어나는 게 어떨지 권하려고 하던 참이었네. 그래서 자네가 몇 번 다시 태어나면 좋을지 계산하고 있었지.”
로라스의 진지한 말에 드렉슬러는 하핫, 웃으며 되물었다.
“그래서 답은 구했나?”
“답이 없더군. 계산에 대한 답도, 다리오, 자네도 말야. 그러니 쓸데없는 일은 관두고 저녁이나 먹으러 가자고.”
로라스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드렉슬러의 어깨를 툭툭 쳐주고는 발걸음을 옮겼다. 드렉슬러는 짧게 웃음을 터뜨리고는 안경알과 조각칼을 내려놓고 삼일 동안 앉아있었던 책상에서 일어나 로라스를 따라나섰다.
저물어가는 해질녘의 석양이 복도의 창문을 타고 들어와 복도를 붉게 물들였다. 드렉슬러의 방에서 나와 석양의 그림자를 밟으며 식당으로 향하는 복도를 네다섯 걸음 내딛었을 때, 로라스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래서 내 필기노트는 보긴 봤나?”
“보긴 봤지. 한두 장 정도는 말야.”
“그래가지곤 졸업심사에 합격할 수 있겠나?”
“글쎄. 난 천재니까 어떻게든 되지 않겠나?”
현실회피적인 드렉슬러의 발언에 로라스는 실없이 웃었다. 시험기간만 되면 드렉슬러가 늘 하던 말이었다. 까다롭기로 유명한 졸업심사도 예외는 아닌 듯 했다. 통과가 될 지, 안 될 지는 본인만 알고 있겠지만.
“그런데 말야,”
로라스는 말을 꺼내다 말고, 걸음을 멈추는 것과 동시에 꺼내려던 말도 멈추었다. 한 걸음 앞서서 걸음을 멈춘 드렉슬러가 로라스를 돌아보았다. 로라스는 허리를 숙여 구둣발에 밟힌 무언가를 들어보였다.
‘-나사?’
회전축이 상당히 긴 수나사였다. 로라스는 손에 들린 작은 나사를 들고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 주변에 나사가 빠질 만한 곳이 있던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로라스의 손에 들린 나사를 본 드렉슬러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말했다.
“시험기간이긴 시험기간인가보네. 어느 나사 빠진 녀석이 흘린 모양이야. 그래서 하려던 말은 뭔가?”
“아, 그건 말일세-.”
로라스는 주운 나사를 주머니에 넣고, 저만치 앞장서서 걷는 드렉슬러를 따라가며 말을 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두 사람은 알지 못했다. 나사 하나가 불러올 일을.
졸업심사시험까지 앞으로 5일이 남은 어느 날이었다.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팬픽게시글로 뵙습니다.
요새 시험기간이기도 하고 그래서, 전부터 생각만 하고 있었던 쌍창글을 올려봅니다.
만우절에 그랑플람 이야기를 올리려고 구상하고 있었는데 귀찮다고 안쓰다보니
시간이 꽤 흘러서 올리기가 그래가지고...
시험을 대비하는 쌍창글로 대신힙니다.
왠지 다음편이 있는 거 같죠?
다음편 없습니다. 뒤로가기 눌러주시면 됩니다. 하하하..
실은, 뭔가의 이야기로 생각하곤 있었는데 이 뒷편을 생각 안해놔서요... 흠흠.
나중에 기회되면 다음 이야기부터 완결까지 한꺼번에 올려볼게요.
그럼 모두 시험 잘 보시고,
직장인 분들은 일 열심히 하시고,
자택경비원 분들은 조금만 더 힘내시는 봄날이 되길 바라겠습니다.
연승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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