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서오세요, 그랑플람 탐정사무소입니다.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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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2-22 14:09:44
*이번 편도 재미있게 읽어주세요:D!
*추천과 댓글 언제나 감사합니다!
티엔이 그랑플람 탐정사무소로 돌아온 것은 늦은 밤이 되어서였다. 언제나처럼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선 그는, 멈칫했다. 아무도 없을 사무실에 불이 환히 켜져 있는 것은 둘째 치고, 평소와 다른 무거운 공기의 흐름이 읽혔다. 비단, 하랑과 마틴이 팔짱을 끼고 쳐다봐서 그런 것은 아닐 터였다. 요새 의뢰를 하나 받았다더니, 잘 풀리지 않는 듯 했다. 그러니 퇴근하지 않고 밤늦게까지 있는 거겠지. 보통 때라면 퇴근하고 없었던 그들이었다. 요새 잘나가는 여자 모델의 의뢰라고 했던 것 같기도 했다. 하랑이 엄청 들떠서는 재잘거리던 걸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기에, 티엔이 기억하는 것은 그것뿐이었다. 지금의 티엔에게는 그런 걸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이 무거운 분위기도 마틴과 하랑의 입에 달달한 음식이 들어가면 금방 가라앉을 터였다. 그러니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티엔은 눅눅하게 내려앉은 무거운 공기를 헤저으며 제 책상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자리에 앉아서 책상 위의 서류들을 정리하는 동안에도 침묵은 잔잔히 흘렀다.
“티엔 정.”
종이를 한 데 그러모아 파일철하려던 티엔은, 서류종이에 드리워지는 그림자 위로 얹어진 목소리에 가만히 고개를 들었다. 마틴이었다.
“언제부터였습니까?”
티엔의 검은 눈동자와 마주한 마틴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티엔의 곧은 눈썹 끝이 마치 승천하는 용의 꼬리마냥 살짝 꿈틀거렸다.
“무슨 말인가, 마틴 챌피.”
“왜 우리에게 말하지 않았냐, 이 말입니다.”
마틴은 책상 끄트머리를 양손으로 잡고, 허리를 낮게 숙여 티엔을 바라보았다. 언젠가 레베카가 데리고 온 용의자를 취조했을 때처럼 사무적으로 말을 건넨 그였지만, 말의 끝마무리는 살짝 떨렸다. 마틴은 흑색 눈동자를 마주했고, 티엔은 금색 눈동자를 마주했다. 서로 마주한 시선 사이로 침묵이 흘렀다. 눈꺼풀 아래로 침묵을 담고서 시선을 먼저 돌린 것은 티엔이었다. 티엔은 눈을 내리깔고서, 손에 든 서류종이를 마저 철했다.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거지?”
티엔의 말에, 하랑과 브루스의 입에서 기다란 한숨이 새어나왔다.
“전부 다 봤어, 우리 모두.”
하랑은 쀼루퉁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그의 말에 티엔은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언젠가 말하려던 참이었다.”
“그 ‘언젠가’가 되기 이전에, 우리에게 말해주지 그랬나.”
모두의 의견을 수렴하고, 모두의 정보를 보고받는 팀장답게, 브루스는 티엔을 나무랐다. 브루스의 말에 하랑이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말하기 힘든 건 이해하지만, 이래봬도 우리, 개인 취향 정도는 존중해준다고?”
“취향이라고 할 것까지는 아니다.”
티엔의 손끝에서 파일철을 끝낸 따닥, 소리가 났다.
“얼마나 되었수?”
“이제 삼사일 밖에 되지 않았군.”
마틴은 티엔이 말한 ‘삼사일’의 시간을 떠올려보았다.
티엔이 말한 삼사일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트리비아가 루이스와 싸우고 난 직후이자, 티엔이 아침부터 사무실을 나서기 시작하던 때였다.
‘어쩌면 트리비아 씨가 루이스 씨와 싸운 이유는….’
거기까지 생각한 마틴은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해서라도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다. 그러나 현실이었다.
퇴근시간에 맞춰, 결슬까지 써가며 급히 누군가를 만나러 가는 루이스.
아침부터 누군가를 만나러 나가서는 저녁이 되어야 들어오는 티엔.
마틴은 입술 끝을 잘근 깨물었다. 언제나 공과 사를 구별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마틴이었다. 책상 끄트머리를 잡고 있는 그의 두 손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그러던 손의 힘을 풀고는, 마틴은 팔짱을 꼈다.
“실망입니다, 티엔 정. 개인 취향이라 존중해주려 했지만, 이건 아니죠. 어쩐지 ”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군.”
진짜 모르겠는 건지, 무덤덤한 티엔의 목소리는 마틴의 화를 돋우기에 충분했다. 마틴은 간만에 하트를 듬뿍 담은 사랑스런 욕지거리를 내뱉을까 하다가, 마지막 자비를 베풀기로 했다.
“후. 루이스 씨와 헤어지시죠.”
“그건 곤란하네.”
하랑의 입에서 헐, 이란 말이 튀어나왔다. 브루스는 젊은이들이 쓰는 단어를 꺼내지 않았을 뿐이지, 표정자체에 ‘헐’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 누군가가 티엔의 심장에 DT를 꽂아본들, 융통성이라고는 찾을 수 없을 것이 분명했다. 차라리 답설무흔으로 스치는 먼지들이 ‘융통성’보다 많으면 많을 터였다. 그런 그가, 정녕 사랑 앞에서 더 융통성 없게 구는 것인가! 마틴은 팔짱을 끼고 있던 손을 들어 이마를 짚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읽어보고 싶었다. 헛수고라 할지라도 말이다.
그러나 티엔의 말 한마디가, 그런 생각은 관두라는 걸 대변해주었다.
“그는 내 의뢰자니까.”
‘의뢰자’라는 말에, 하랑과 마틴, 브루스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할 말을 잃은 그들에게, 티엔은 파일 끝을 책상에 부딪혀 가지런히 정리하며 삼사일 동안 있었던 일들을 말했다.
─삼사일 전.
티엔은 브루스의 심부름으로 아침부터 근처 카페에서 샌드위치를 사가지고 나오는 길이었다. 그런 그의 눈에, 맞은편 서점에서 수상한 움직임이 들어왔다. 도둑은 데스크에 있는 루이스만 신경 쓰느라, 전면 유리창 너머로 티엔이 보고 있는 걸 모르고 있었다. 그는 살며시 품속으로 책 한 권을 숨겼다. 티엔은 데스크를 바라보았다. 데스크에 서 있는 루이스는 딴 생각을 하는지 벽에 걸린 시계를 보며 멍하니 있기만 했다. 그런 사이, 책도둑은 여유롭게 루이스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는 서점을 나섰다. 그리고 재빨리 현장에서 벗어나려는 것을, 계속 주시하고 있던 티엔이 답설무흔으로 쫓아가 잡았다. 하랑은 그 이야기를 들으며 그 날 아침 티엔이 사 온 샌드위치를 떠올렸다. 확실히 종이봉투 안에는 빵 따로, 야채 따로 놀고 있었다. 덕분에 마틴과 하랑에게서 있는 구박, 없는 구박을 받았지만, 구박을 받기 전에는 루이스로부터 연신 고맙다는 말을 들었던 그였다. 티엔의 생각처럼 루이스는 딴 생각을 하느라 책도둑을 보지 못했음을 시인했다. 티엔은 자연스레 무슨 고민이라도 있는지 묻게 되었고, 우리의 ‘영웅’님은 주괴값이 폭등하는 트와일라잇의 경제 걱정보다, 생일을 앞두고 있는 연인에게 줄 선물을 생각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생일선물도 선물이지만, 그가 더 고민하고 있는 것은 그녀와의 화해 방법이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생일을 앞두고 크게 다툰 모양이었다. 그러니 루이스가 마음이 더 쓰이는 것도 당연할 터였다. 루이스는 서점을 자주 찾는 앨리셔에게 이와 같은 고민을 풀어놨다. 같은 ‘여자’니까 어떻게 하면 좋을지 잘 알고 있을 것 같아서였다. 그러나 그녀라고 딱히 괜찮은 대답을 내놓은 건 아닌 듯 했다. 마틴은 서점에서 앨리셔가 루이스에게 건넸던 말들을 떠올렸다.
-전에 물어봤던 것, 생각해보셨어요?
-그게…, 미안해요. 어떠한 답을 드릴 수 없네요.
그 때 엿들었던 게 그런 이야기였다니. 마틴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루이스는 앨리셔에게 대답을 듣지 못해, 한 번은 남자에게도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렇다고 같은 지하연합의 남자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기가 껄끄러웠다. 안 그래도 토마스가 궁 쓴 것처럼 찬바람이 휑휑 부는 지하연합이었다. 그렇게 만든 장본인이 자신이라는 걸 잘 알기에, 도움을 요청하기에도 괜히 미안했다. 그러니, 지하연합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려고 하던 차에―그랑플람의 티엔을 만나게 된 것이었다. 마침 티엔이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기도 했겠다, 루이스는 티엔에게 자신의 연인에게 어떤 선물을 줘야 화가 풀릴 지에 대해 물었다. 잠시 생각하던 티엔은 그의 고민을 ‘의뢰’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것이 삼사일 전의 일이었다.
그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마틴은 트리비아의 의뢰를 떠올렸다. 트리비아가 그랑플람 탐정사무소에 의뢰한 것은 루이스가 바람 피는지 알아봐달라는 요청이었다. 그것은 곧 트리비아 그녀 역시 루이스와 다툰 것을 나름 신경 쓰고 있다는 증거였다. 다투었다는 이유로 헤어질 생각을 하고 있었다면, 그가 누구를 만나든 신경 쓰지 않고 자연스러운 이별을 택했을 터였다. 티엔이 전해준 루이스의 상황도 그리 달라보이진 않은 것이, 대놓고 물어볼 수 없는 것들을 다른 사람들을 통해 듣고 싶은 것이리라. 서로에게 대놓고 물어보기엔 세계적으로 잘 나가는 모델과 전쟁을 승리로 이끈 영웅의 자존심이 있었다.
마틴은 손으로 턱을 쓰다듬으며 티엔에게 물었다.
“그래서 결론은요? 의뢰, 아니, 루이스 씨의 고민은 해결된 건가요?”
“나도 고민중이다.”
“그거 뭔데.”
아직까지도 고민중이라는 티엔의 말에 얼이 빠진 하랑이었다. 의뢰를 해결해줘야 할 탐정이 이렇다 할 해결점을 찾지 못하고 의뢰자와 같이 고민하고 있었다. 아니, 애초부터 다른 누구도 아닌 티엔에게 그런 의뢰를 맡겼다는 것 자체가 루이스의 잘못된 선택이었다. 하랑은 손으로 이마를 짚고 가만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러나저러나 우리처럼 오해가 있었구만, 그래. 그런 건 서로 만나서 대화로 푸는 것이 좋은 법이지.”
“어떻게요, 영감, 아니 팀장님?”
“조만간 트리비아 씨의 생일이니, 준비한 선물을 주면서 오해였다고 말하는 건 어떨까요? 연인끼리는 화해하니까 좋고, 우리는 두 의뢰를 한 번에 해결할 수 있으니 좋고. 동양에서는 이걸 일석이조라고 하더군요.”
마틴의 의견에 하랑은 감탄과 존경어린 시선으로 마틴을 바라보며 손가락을 딱, 튕겼다.
“거 좋은 생각이네! …근데 선물은?”
사건해결의 열쇠인 본 질문을 꺼낸 하랑의 말에 다시 한 번 침묵이 찾아왔다. 침묵 사이로 브루스의 작은 한숨이 이내 머물렀다 사라졌다. 남녀 사이라는 게 그렇게 간단하게 끝날 일이 아니라는 것을, 이 나이가 되도록 살아오면서 터득한 그였다. 하지만 브루스의 직감에도 두 의뢰의 핵심열쇠는 ‘트리비아의 선물’임은 틀림없었다.
“루이스는 명품 가방을 생각해보았다 했으나, 모델이니 웬만한 건 다 가지고 있을 거라 추측한다.”
“그건 저도 동감이군요. 물질적인 것은 오히려 역효과 낼 수 있어요. 상대방을 생각하는 진심어린 사과―. 그거야말로, 루이스 씨의 진심을 건넬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죠.”
“뭐 하러 그렇게 뱅뱅 돌아가, 간단한 것을.”
머리를 긁적이던 젊은 피 하랑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하랑에게로 쏠렸다. 하랑은 자신이 생각한 ‘간단한 방법’을 말했다.
“헤어져. 그럼 편해.”
“...남의 일이라고 함부로 말하는 거 아닙니다, 하랑.”
마틴은 흐린 눈으로 하랑을 나무랐다. 하랑은 고개를 돌리고는 들릴락말락 작은 목소리로 쳇, 소리를 중얼거렸다. 마틴은 달력을 바라보았다. 트리비아와 카페에서 만나기로 한 날은 내일이었다. 내일은, 트리비아의 생일이기도 했다.
“일단은, 만나보는 게 중요한 거니까요. 어디 한 번 부딪혀 보자구요.”
마틴의 목소리 끝을, 째깍째깍, 내일을 향해 움직이는 초침소리가 이었다.
* * *
루이스는 팔짱을 끼고서 맞은편 소파에 앉아있는 트리비아를 바라보았다. 그는 마른 침 한 번 삼키고는, 마틴이 준비해준 비장의 무기를 꺼내들었다.
“―미안해.”
그의 말에 트리비아의 눈이 조금 커졌다. 그것도 잠시. 그녀의 눈이 작은 호(弧)를 그리며 눈웃음을 만들었다. 트리비아는 손으로 얼굴을 괴고는 웃으며 말했다.
“어머? 우리 영웅님이 내게 미안할 게 뭐가 있어서 미안하다고 할까~?”
“어? 어어, 그게… 지난 번에… 내가 말이 좀 심한 것 같아 미안해서….”
“미안해서? 뭐가 미안하지? 그보다, 미안해할 짓을 한 건 알고는 있는 거야, 자기?”
루이스는 박쥐폭풍처럼 질문을 퍼붓는 트리비아의 말에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이런 건 마틴과 오면서 상황극으로 연습했던 예상 질문으로도 없었다. 루이스는 당황하며 머릿속으로 마틴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나 돌아오는 백업은 없었다. 루이스는 식은땀을 흘리면서, 뒤편 어딘가에 앉아있을 그랑플람 탐정사무소의 인재들이 자신을 구해주러 오길 기다렸다. 그러나 플랜 C로도 없었던 뜻밖의 상황을 만난 그랑플람의 숭고한 인재들은, 그저 메뉴판 책자를 정독하며 영웅의 요청을 외면해야 했다.
전장에서 홀로 영웅이 된 루이스였기에,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촉즉발의 상황을 해결하는 것도 온전히 루이스의 몫이었다.
이렇게 트리비아와 루이스의 의뢰가 끝났습니다.
네, 끝입니다(..)
사실 저 뒤에 두문단 정도 추가 했다가 그냥 저대로 끝내는 게 나은 거 같아서 딱, 여까지만 올려요.
딱히 루이스에게 악감정 있는 건 아닙니다. 하하.. 샤드 그만 먹여라ㅡㅡ
전에 올렸던 글보다 분량이 짧아보이는 건 착각...입니다. 그래봐야 1페이지 정도 차이나더라구요(긁적)
트리비아 생일을 염두에 두고 쓴 글이라서, 마지막 글은 틀비 생일이 있는 주에 올려봅니다.
원래.. 올해부터 다른 글을 연재해보려고 했었는데,
그랑플람 탐정사무소 잘 보고 있다며, 팬이라고 해주시는 분들이 계셔서
감사한 마음에 그랑플람 탐정사무소로 다시 뵙습니다:D
아참, 책으로 엮은 그랑플람 탐정사무소는 29일까지 통판 받고 있어요.
많은 분들의 관심 덕에 딱 세 권만 남았네요. 헤헤//
통판 관심있으신 분은 댓글이나 우편 남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제 개학시즌이네요!
즐거운 스쿨라이프 보내시고, 저는 나중에 또 찾아뵙겠습니다!
연승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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