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서오세요, 헬리오스 단합대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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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2-20 00:32:05
*헬리오스 시즌을 맞이해서 헬리오스 식구들로 글 써본 것을 올려봅니다.
*회사 단합대회이니만큼, 등장인물은 20대 이상 캐릭들만 나옵니다.
*이번 편도 재밌게 읽어주세요!
“예에-?”
드렉슬러는 조금 전 윌라드의 말에 짧게 반문하며 자신이 잘못 들었기를 바랐다. 타라는 다시 한 번 더 물어보면 막힌 귀를 공간발화 3연타로 뚫어줄 생각으로 드렉슬러를 바라보며 또박또박 말했다.
“이번 단합대회, 이사님도 참석하십니다.”
그 누구도 잘못 들은 것이 아니었음을, 회의실에 감도는 적막감이 증명해주었다. 입술이 바짝바짝 말라가는 침묵 속에서 로라스가 떨군 볼펜이 도르륵, 구르는 소리만 들렸다.
헬리오스는 매년 상반기, 하반기에 단합대회를 가졌다. 말이 단합대회이지, 간단한 회식(이라지만, 새벽까지 술로 이어지는, 절대로 간단하지 않는 회식)을 가지는 게 전부였다. 그러나 이번 단합대회는 여느 때와는 달랐다.
“...등산 간다고 할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드렉슬러는 깍지 낀 두 손 위로 이마를 갖다 대며 들릴락말락 중얼거렸다. 윌라드는 회의 테이블에 앉은 회사의 능력자들을 바라보았다.
“제가 참석하는 단합대회이니만큼, 정규직, 계약직 가릴 것 없이 모두 참석했으면 합니다.”
윌라드 옆에 서 있는 타라의 표정도 썩 좋지만은 않았다. 정작 챙겨줘야 할 야근수당 같은 건 챙겨주지 않고, 꼭 이럴 때만 ‘계약직’을 챙기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드니스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오랜만의 가을 숲이겠군요.”
“...상부의 명령이 그러하다면 가기는 가야겠군.”
상부의 명령이라면 일단 실행에 옮기고 보는 자네트도 긍정적이었다. 누군가가 의의를 제기하기를 바라던 드렉슬러는 한숨만 내쉬었다. 누가 하늘과도 높은 이사님에게 클레임을 걸랴. 갈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어버린 분위기에 로라스는 창문 너머만 바라보았다.
“비도 한차례 지나갔겠다, 공기는 맑겠군요.”
영혼 없이 말하는 로라스의 말에, 드렉슬러는 회의실에 들어온 뒤로 한층 더 짙어진 퀭한 눈을 들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한숨을, 윌라드가 미소지으며 받아쳤다.
“산행에 참여한 모두에게 고기를 쏘겠습니다.”
“콜.”
퀭했던 눈에 생기가 도는 드렉슬러와,
“기꺼이.”
조용하면서도 강직하게 말한 드니스와,
“상부의 명령을 따르도록 하지.”
명령이라면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말한 자네트와,
“고기는 정의니까.”
그것이 당연하다는 듯이 로라스가 동시에 대답했다.
그렇게 ‘고기’라는 단어 하나에, 모두 등산가기로 결정 났다. 그 자리에 없는 다이무스도 마찬가지였다. 헬리오스의 이사-윌라드가 참여하는 이상, 제아무리 은행업무로 인해 회의와 단합대회에 참여하지 않은 다이무스라 할지라도 이번 단합대회만큼은 참석할 수밖에 없을 터였다.
이 모든 사항에 대해서, 다이무스는 등산 가기 하루 전날 퇴근길에서야 접하게 되었다.
* * *
“...해서 왔는데.”
바닥에 드러누워 하늘을 바라보고 있던 드렉슬러의 얼굴 위로 낙엽 하나가 떨어졌다. 분명히 윌라드는 ‘등산’이라고 말했었다. 게다가 둘레길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회사 안에서만 생활하는 사람들이 무슨 운동 같은 걸 했겠냐며 무리하지 않는 차원에서 완만한 둘레길을 골랐다던 윌라드였다. 하지만 그들이 보았던 것은 ‘완만한 등산길’이 아니라 굽이굽이 친 계곡물이었다.
드렉슬러는 처음에 ‘둘레길이니까~’라고 단순히 생각했는데, 한자리에 모인 모두의 표정을 읽고서 이건 뭔가 아니다 싶은 불안한 예감이 들었다. 근처에 등산길이라고 알려주는 이정표 같은 것은 없었다. 말 그대로 계곡물 근처였고, 다듬어진 등산코스도 아니었다.
근처 바위에 기대어 팔짱을 끼고, 눈을 감고서 가을의 정취를 느끼고 있던 다이무스는 감았던 눈을 떴다.
“이게 어찌된 일인지 설명해보겠나, 드렉슬러.”
그의 눈빛은 금방이라도 참절도를 베어버릴 것처럼 날이 서려 있었다.
바로 전날, 다이무스에게 헬리오스 단합대회 소식을 전달한 것은 드렉슬러였다. 어째서인지 ‘고기’ 이야기만 하는 드렉슬러의 말에서 용케도 《윌라드배 단합대회》라는 단어를 캐치해낸 다이무스는 어쩔 수 없이 등산에 합류하게 되었다. 그래서 최신 아웃도어를 입고 왔건만... 무릎까지 걷어 올린 바지 끝에서 물이 뚝뚝 떨어졌다.
“...등산이라 했잖소...”
얼굴이 허옇게 뜬 릭은 계곡물 따라 흘러내려가는 낙엽을 바라보며 힘없이 말했다. 조만간 있을 계약체결만 아니었다면 오지도 않았을 그였다. 혹시 모르니 눈도장 한 번이라도 찍어보는 것이 거래처 입장에서도 좋을 것 같아서 왔는데, 아무리 봐도 이건 ‘등산’이 아니었다. 무릎이 안 좋다는 이유로, 계곡길 옆에 난 오솔길을 따라서 누구보다 먼저 정상에 도착해서 가을의 정취를 실컷 맛보고 있던 윌라드는 뒷짐 지고서 말했다.
“처음부터 계곡 트래킹이라 하면 올 생각도 하지 않았을 거 아닙니까.”
그건 맞는 말이었다. 맞는 말이라서, 모두 입을 꾹 다물고서 윌라드의 시선을 회피했다. 시선을 회피했어도, 그들의 귓가에 들리는 야생의 계곡물 소리만큼은 피할 수 없었다.
“비가 온 뒤라 계곡물이 꽤 불어났지만, 트래킹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지 않습니까.”
도대체 어디가 더할 나위 없이 좋다는 건지, 그 누구도 공감하지 못했다. 물론 계곡물처럼 시린 푸른 하늘 아래로 울긋불긋 단풍잎이 떨어지는 풍경은 가을 정취를 느끼기 좋았다. 그랬다. 계곡물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말이다.
우수수 떨어지는 낙엽을 우수에 가득 찬 눈빛으로 바라보던 윌라드가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어떠십니까. 정상에 오르니, 하늘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습니까?”
돌아본 그곳에는 기진맥진한 헬리오스의 회사원들이 낙엽과 하나가 되어 나무 옆에, 흙바닥에 여러 모습으로 누워있었다.
“그리운 엘윈이여...”
참을 수 없이 쓸쓸한 가을의 시림에, 드니스의 입에서 절로 고향의 그리움이 흘러나왔다. 고운 생머리에 한껏 말아 올린 앞머리가 개성적이었던 그녀의 머리는, 타라가 준 고무줄로 높게 동여맨 것이 무색할 정도로, 덕지덕지 내려앉은 낙엽들과 어우러져 잔뜩 헝클어져 있었다. 짧은 머리인 자네트도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드니스와는 달리 숏컷이라서 그리 험한(?) 모습은 아니었다. 하지만 자네트에겐 외모 걱정보다는 자존심이 무척 상했다. 아침마다 아버지인 제레온과 함께 뒷산을 올랐기에 어느 정도의 기초체력은 자신 있다고 생각한 그녀였다. 그러나 지금 바닥에 드러누운 자신의 모습은 어떠한가. 고작 계곡물 따위에게 체력을 빼앗긴 자신이 한심스러웠다. 그래도 체력만큼은 자신 있다고 자부하는 창쟁이들도 드러누운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어느 정도 위로가 되긴 했다.
쓰러지면 기상창으로 일어나는 게 일인 드렉슬러와 로라스는 기상창으로 일어날 기력도 없었다. 사관학교에 있을 때에 별의별 훈련을 받아봤지만, 밑도 보이지 않는 흙탕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훈련 같은 건 없었다. 차라리 그 때 받았던 강도 높은 훈련을 10세트 더 하는 것이 나았다. 하늘로 쭉쭉 뻗은 나뭇가지 너머로 어스름한 어둠이 찾아오는 것을 보며 드렉슬러는 중얼거렸다.
“로라스. 내가 부탁이 있는데.”
드렉슬러는 마른 침을 한 번 삼키며 운을 떼었다.
“내 책상 두 번째 서랍을 보면 봉투 있거든. 그거 내일 이사님께 전해드려.”
“내 책상 세 번째 서랍에도 자네와 같은 봉투가 있는데, 그걸 우리 대신 갖다 줄 사람을 찾아야겠군.”
로라스의 말에 드렉슬러는 하핫, 웃음을 터뜨렸다. 그걸 해줄 사람이라면 단 한 명-,
“마녀, 어째서 그렇게 쌩쌩한 거야...?”
드렉슬러는 힘든 내색은 전혀 드러내지 않고 등산용 신발을 거꾸로 들고 물을 털어내는 타라에게 물었다. 타라는 신발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야근의 힘이랄까. 야근을 하려면 이 정도의 체력은 있어야지.”
“맞는 말입니다. 야근의 힘은 곧 회식 아니겠습니까. 자, 그럼 회식을 위해 이제 내려갑시다.”
“...예?”
바닥에 드러누운 능력자들은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누군가의 목에서 우둑, 소리가 들렸다. 일어날 힘도 없었던 드렉슬러는 놀란 나머지 기상창으로 벌떡 일어났다.
“걸어 내려갑니까?”
천하의 다이무스는 지친 표정을 애써 감추며 무덤덤히 물었다. 뭘 그런 걸 묻냐는 듯한 표정의 윌라드가 입을 여는 순간, 드렉슬러의 말이 더 빨랐다.
“쉽게 갑시다, 쉽게.”
드렉슬러는 나무 기둥에 기대어 있던 릭의 목덜미를 잡아 끌어왔다. 이미 한두 번 속의 것을 게워낸 릭은 허연 얼굴을 들 힘도 없이 추욱 늘어진 손을 들어 보이며 그러자는 말을 대신 했다. 릭에게 고기집의 좌표를 말해주면, 고기집 현관문 앞으로 게이트를 열어줄 터였다. 하지만 그 전에 해결해야 하는 문제점이 있었다.
“지금 이 몰골로 고기집에 가는 건 민폐일 것 같습니다.”
“좋은 지적입니다, 조노비치 양. 이렇게 가는 건 실례가 되겠지요.”
윌라드는 타라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드렉슬러는 왠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설마 옷이 마를 때까지 여기 있자는 이야기는 아니겠지?'
그는 점점 어두워지는 산세를 걱정스레 바라보았다. 산 속이 어두워지는 것이 불안한 것일까. 그 불길한 예감은 언제나 적중해서일까. 그건 드렉슬러 자신도 알 수 없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불길한 예감이 스멀스멀 다가온다는 것이었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스멀스멀 피어오르던 불길한 예감은, 그의 머리 위로 정확히 떨어졌다.
“유성-”
타라가 손끝을 치켜든 것과 동시에, 윌라드는 뇌보법을, 로라스는 용성락을, 자네트는 팬텀을, 드니스는 엘윈의 손길을, 다이무스는 질풍을, 릭은 디멘션 준비를 했다.
단 한 사람을 빼고.
“♡♡, 잠-”
잠시 후, 산악경비대는 산의 정상 위로 떨어지는 한 줄기의 유성을 바라보았다. 굉음이 들린 것은 그 다음이었다.
* * *
철판 위의 고기만큼이나 꾀죄죄하게 그을린 드렉슬러는 릭의 게이트를 타고 도착한 고기집의 현관문을 바라보며 허망한 웃음을 터뜨렸다. 그의 눈앞에 보이는 것은 [정기휴일]이라는 표지판이었다.
“이, 이게 뭐죠...? 이사님...?”
드렉슬러는 덜덜 떨리는 손가락으로 표지판을 가리키며 윌라드를 돌아보았다.
“아, 오늘이 정기휴일이었군요. 미처 몰랐습니다.”
이 모든 것의 원흉(?)인 윌라드는 영혼 없는 목소리로 당당하게 말했다. 고기집이 아니어도 좋았다. 그냥 밥이라도 먹었으면 좋으련만, 이 주변에 있는 식당이라고는 이 고기집 밖에 없는 것이 문제였다.
“어쩔 수 없군요. 회식은 내일 합시다.”
윌라드의 말에, 모두 귀를 의심했다. 회식이라하면 일의 연장선이었다. 다시 말해, 회식을 내일 하자는 것은-
“그러니, 내일 출근하세요.”
절망적인 내일을 예고하는 말에, 모두 속으로 하트를 연발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윌라드를 향한 하트를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그저 네, 라는 말로 대신해야 했다.
릭은 한 번도 자신이 다니는 회사에 대해 소속감이라든가 사명감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이 순간만큼은 자신이 헬리오스 소속이 아니라는 것이 너무나 감사했다. 고기를 얻어먹지 못한다는 것쯤은 전혀 아쉽지 않았다. 쉴 수 있다는, 그거 하나면 되었다. 릭은 옆에 묵묵히 서 있는 다이무스의 어깨를 가만히 다독여주었다.
헬리오스 직원들에게 있어 절망적인 내일은,
토요일이었다.
왠지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니, 크리스마스용 글을 올려야 할 것 같지만...!
가을 즈음에 헬리오스 단합대회로 써본 것이 있었는데
계절은 이미 지나갔어도... 마침 헬리오스 시즌이 시작되기도 했고해서 조금 수정해서 올려봅니다.
요새 쌍창 이야기를 쓰고 싶단 생각이 들어서-,
다음번엔 그랑플람 탐정사무소로 찾아올지, 쌍창 이야기로 찾아올지 모르겠습니다만,
1월 말에 새로운 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
연말 준비 잘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