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yphers

  • [광복절 글][하랑] 그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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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역의아이오로스 [50급]

2015-08-13 01:42:56

* 광복절 관련 글로, 하랑중심의 글입니다.

* 짧지만, 조금 무게가 있는 글입니다.

* 이번 글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천과 댓글도 늘 감사합니다!






전쟁이 끝났다.

짙은 안개가 드리워졌던 3차 능력자 전쟁을 끝내게 한 것은, 능력자도, 비능력자도, 연합도, 회사도, 제3의 세력도 아닌 또 다른 ‘전쟁’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각국 정부에서는 등록 및 관리하고 있던 능력자들을 본국으로 불러 들였다. 능력자들은 정부요청에 따라, 가상세계인 트와일라잇에서 벗어나 각자의 나라로 돌아갔다. 각국의 정부가 능력자들에게만 요청한 것은 아니었다. 단체들도 마찬가지였다. 영국 정부는 지하연합과 헬리오스에게 최대한 협조해달라는 공문을 보냈다. 그로인해 지하연합과 헬리오스, 그리고 3차 능력자 전쟁에 참여한 제 3세력들은 임시휴전을 맺고, 현실로 닥친 전쟁에 집중하기로 했다.

그랑플람 재단 역시 전쟁을 피할 수 없었다. 그랑플람의 후원자이자 최고위원인 브루스는 영국 정부의 공문을 받은 헬리오스의 요청에 따라 폴란드의 함선과 무역선이 피신해있는 항구에 파견되었다. 영국 정부가「어떤 요청」을 했는지, 왜 브루스가 가야만 했는지, 그가 언제쯤 돌아올지, 하랑은 알지 못했다. 브루스야, 영국인이자 영국의 능력자이니까 영국 정부의 요청에 따르는 건 당연했다. 브루스는 떠나기 전에 자신이 가지고 있던 모든 권한을 마틴에게 넘겨주었다. 그러면서 하랑에게는 무슨 일이 있으면 마틴에게 말하면 된다고 넌지시 알려주었다. 하랑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2년 전에 티엔이 중국으로 떠나면서 그랬듯이, 브루스도 너무 걱정하지 말라는 말과 함께 그랑플람 재단의 문을 나섰다.

하랑은 아직 ‘대기 상태’로 남아있는 마틴 역시 영국의 능력자이니까, 어쩌면 브루스처럼 다른 곳으로 가게 될 지 생각해보았다. 그러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마틴마저 다른 곳으로 간다면 그랑플람에는 하랑만 남게 된다. 물론 다른 사람의 공백이야, 헬리오스에서 사람을 보내면 그만인 일이었다. 그러나 헬리오스의 능력자들도 각자의 나라로 돌아간 마당에, 거기에 브루스까지 다른 곳으로 보낸 와중에, 최소한의 인원을 유지하면서 더 이상의 인력을 빼버릴 무리수는 두지 않을 터였다. 그 정도쯤이야 그랑플람에서 몇 년을 지내면서 얻게 된 눈칫밥으로 읽을 수 있었다.

그런 것에 있어서 하랑은 자신이 ‘영국인’이 아닌 것을 다행으로 여겼다. 그랑플람이 ‘영국’에 소속된 단체이긴 하지만, ‘영국인’이 아닌 하랑은 영국 정부의 우선요청능력자 리스트에 포함되지 않았다. 그말인즉슨, 영국 정부의 부름에 응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었다. 하랑은 주변의 능력자들이 정부의 지시에 따라 자리를 옮기거나 각자의 나라로 돌아가는 것을 볼 때마다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는 알고 있었다. 자신의 나라가 자신을 부를 일이 없다는 것을. 아니,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그러니 그저 주어진 일을 하자.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나았다. 하랑에게 있어서 전쟁은 어차피 남의 나라 이야기였다. 이런저런 생각보다 눈앞에 놓인 일이 급선무였다. 브루스도, 티엔도 없이 두 사람이 해야 할 일은 매일같이 쌓이고 쌓였다. 하랑은 각 지부에서 받은 서류들을 한데 모았다. 군용물품이나 군수자원과 관련된 서류들이었다. 그랑플람은 원래 무역품을 담당했기에, 전쟁이 일어난 뒤에는 연합국 간에 오고가는 군용물품이나 군수자원 등을 담당하게 되었다. 런던 공습이 있고 나서는 파괴되거나 오지 않은 선박의 군수자원을 헤아려야 했다. 해안가의 항만시설이 파괴되고, 민박선, 군함 가릴 것 없이 배라는 배는 부서지거나 침몰되었다. 그런 것들을 일일이 파악하는 것이 그랑플람의 일과였고, 하랑의 일과였다. 영국 소속도, 연합국 소속이 아닌, ‘그랑플람 소속’일 뿐인 하랑은 전쟁이 가져다주는 불안감이나 두려움보다는 이 지긋지긋한 일이 어서 끝나기만을 바랐다.

그랬던 전쟁이 끝난 것이었다.

그것도 매일같이 라디오를 듣던 마틴이 환호가 섞인 들뜬 목소리로 말해주었기에 알 수 있었다. 공식적으로 종식 선언이 되었다지만, 정말로 전쟁이 끝난 것인지, 하랑은 감이 오지 않았다. 전쟁이 끝났음에도 책상에 쌓이는 서류는 여전했고, 정부에 보고해야 하는 리스트도 아직 남아있었다. 책상 앞에서 느낄 수 없었던 종전의 느낌은 다음날 아침이 되어서야 몸소 느낄 수 있었다.


“호외요, 호외! 전쟁이 끝났습니다! 호외요! 호외!”


비단 신문팔이 소년의 외침 때문만은 아니었다. 거리를 오고가는 사람들마다 전쟁이 끝났다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하랑은 샌드위치를 사고 남은 몇 푼짜리 동전으로 신문팔이 소년에게서 신문을 샀다. 멀리 갈 것도 없이 근처 벤치에 앉아 손으로는 샌드위치 포장을 벗기며 눈으로는 벤치 위에 놓아둔 신문의 1면을 읽었다. 신문 1면에는 전쟁이 끝났다는 헤드라인이 굵고 큼지막하게 써있었다. 샌드위치를 한 입 베어 문 하랑의 붉고 푸른 눈이 깜빡였다. 하랑은 샌드위치를 먹으면서 단어 하나하나 읽어 내려갔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하랑을 중심으로 샌드위치 안에 들어있는 양배추를 씹는 소리도, 바스락거리며 포장을 벗기는 소리도 나지 않았다. 샌드위치를 들고 있던 그의 손이 샌드위치를 내려놓고, 대신 신문을 집어 들었다. 하랑은 눈을 꿈뻑거리며 신문 마지막 문단의 작은 헤드라인을 따라 읽었다. 틀림없었다.


─ 일본의 항복.


기사의 작은 헤드라인은 분명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전쟁이 끝난 것이 사실이듯이 그 문장 또한 사실임이 틀림없었다. 하랑은 신문을 뒤적였다. ‘JAPAN’이라 적힌 작은 헤드라인을 찾아 읽었다. 읽고, 또 읽었다. 바스락거리는 종이 사이사이와 단어 사이사이를 훑던 그의 시선이 한 문장에서 멈췄다.


─…그에 따라 일본은 동남아시아 일대 지역 및 한국에서 철수한다.


하랑의 시선이 그 문장에 오래도록 머물렀다. 한입 베어 물었던 샌드위치를 언제 삼켰는지 알 수 없었다. 입이 마른침으로 텁텁했다. 신문을 내려놓은 하랑의 손이 떨렸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몸을 더듬거렸다. 주머니란 주머니를 뒤적였다. 그러나 어디에도 손에 잡혀야 할 것이 잡히지 않았다. 벤치에서 일어나면서까지 주머니를 뒤적이던 하랑은 그제야 자신이 연합군복을 입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와 동시에 빨간색과 파란색이 교차하는 원래 입던 옷이 사무실 옷장에 걸려있다는 것을 기억해냈다. 그 옷의 안쪽주머니에 부적처럼 늘 지니고 다니던 것이 있었다. 고향을 떠날 때 제삼이 손에 쥐어준 것이었다.


─가더라도 잊지 마. 이 나라를. 조국을. 그리고 그 말을.


하랑은 제삼이 손에 쥐어주는 작은 천조각을 받아들며 그 말을 꺼낼 날이 올까 싶었다.

그래도 언젠가는 오지 않을까. 그 말을 외치게 될 날이.

모두가 알고 있지만, 모두가 숨죽이고 마음속으로만 외쳐야 했던 그 말이, 하랑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거리에 나와 있던 외국인들은, 영국인들은, 가로등 아래 벤치에 올라가 신문을 흔들어대며 들어본 적 없는 이국의 말로 고래고래 소리치는 동양의 청년을 신기하게, 혹은 이상하게 바라보며 지나갔다.

그 누구도 동양의 청년이 외치는 이국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알아듣는 사람도 없었다.

목의 핏대를 세우고 외치는 이국의 말을 알아듣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아무도―.

그래도 머리를 곱게 땋은 동양의 청년은 구겨질 대로 구겨진 신문을 흔들며 끊임없이 외쳐댔다.




만세, 만세, 대한독립 만세.


대한독립,

만세.

 


그랑플람 탐정사무소 (4)편의 끝에 적어놓았던대로 광복절 관련 글을 올려봅니다.

광복절 즈음 되면 하랑의 이야기로 한 번 써보고 싶었던 글입니다.

하랑이 머나먼 타지에서 광복 소식을 들었다면 어땠을지... 그런 생각으로 써봤습니다.

쓰면서 나름 2차세계대전과 관련된 정보를 찾아가며 써봤지만... 실수가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이 뒤에 한문단 정도의 짧은 글이 있기는 한데, 그걸 이어붙이자니 광복절 관련 글의 의미가 무색한 것 같아서 뺐습니다...

나중에 뒷 이야기를 쓰게 된다면 초반부에 써볼까 싶긴 한데, 그건 또 언제가 될지 모르겠네요.. ㅎㅎㅎ


이번 글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광복의 의미를 되새기며 광복절 잘 보내세요!




덧) 제삼이 고향을 떠나는 하랑에게 주었던 '작은 천조각'은 태극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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옳소! 감탄했습니다. 흐음 후회할거요! 감사합니다. 놀랐습니다. 충격을 받았습니다.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정색) 축하드립니다. 칭찬해 드립니다. 놀랍군요. 매우 화가 나네요. 큰 충격입니다. 놀랍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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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잘 못 들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매우 화가 나는군요 가슴이 두근거리네요 좌절상태입니다 감탄했습니다 칭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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