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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1-06 02:19:30
아래 글과 이어지는 내용입니다만 꼭 읽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마도
http://cyphers.nexon.com/cyphers/article/bestart/topics/14641011
함께 들으셔도 좋고 안 들으셔도 좋을 노래
설정 날조 주의/ 루이틀비 주의
꽃내음이 코를 찔렀다. 뒤를 돌아보자 연인의 얼굴이 보였다.
“거기서 뭐 해?” 트리비아가 물었다.
루이스의 입술 사이로 나직한 침음이 흘렀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어떻게 알았어?”
루이스의 물음에 트리비아는 잘게 웃었다.
“글쎄…. 사랑의 힘?”
이번에는 루이스가 웃었다. 하얀 셔츠와 빳빳하게 풀을 먹인 재킷을 입고 앞머리까지 깔끔하게 넘긴 루이스의 모습이 신선했다. 제 연인이라지만 그는 정말이지, 매력적인 남자였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 푸른 머리카락 사이로 발갛게 물든 귓가가 유독 눈에 띄었다. 그래서야 오늘 안에 말할 수 있겠어? 속말을 삼킨 트리비아는 재킷 너머로 언뜻 보이는 붉은 꽃잎을 보지 못한 척 나붓이 웃었다.
사랑. 트리비아는 제가 내뱉은 그 달콤한 단어를 천천히 곱씹었다. 그것은 바란 적 없던 능력과 빼앗긴 꿈 사이에서 잃어버린 평범을 맛볼 기회를 주었다. 그리고 그건 실로 마약과도 같았다. 그리하여 트리비아는 자신의 연인을 사랑했다. 이성으로서의 의미만은 아니었다. 그는 잘생겼고 매력적인 다정한 애인이었고, 연합을 구한 영웅이었으며, 심처에 자리 잡은 고약한 외로움을 어루만져주는 아버지와도 같았다.
하지만 제 마음을 사로잡은 무수한 면 중 트리비아를 가장 자극하는 것은, 청년의 나약함이었다. 그는 짊어진 것이 많았다. 개중엔 스스로 선택한 것이 있기도 했지만 억지로 떠맡은 것들도 있었다. 루이스는 제 어깨 위에 쌓인 의무 혹은 희생과 같은 것 중에서도 부담이라는 걸 가장 버거워했다. 그래서 그가 자신을 부르는 여러 호칭 중 영웅이라는 이름을 제일 끔찍해 한다는 것을 트리비아는 알고 있었다.
영웅.
그랬기에 트리비아 또한 그 호칭이 유쾌하지 않았다. 그 단어는 건방지게도 감사의 마음을 담는 것만으로 족하지 못했다. 감히 그 이상의 것들을 요구했다. 그의 약함마저 사랑했지만 그렇다 하여 다른 누군가 그를 약하게 하는, 저 이외의 괴로움을 주는 것은 용서할 수 없었다.
하지만 모순되게도, 트리비아는 또한 그 부름을 좋아했다.
영웅. 루이스는 트리비아의 영웅이었다. 그녀의 영웅은 다시는 내어놓지 않으리라 숨겼던 제 마음을 끄집어냈다. 황무지로 쫓겨난 그녀의 곁에 머물러주었다. 그것만으로도 트리비아는 구원받았다. 그런 그를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래서 트리비아는 그를 품어주고 싶었다. 가능하다면 그를 배태하여 그의 태초부터 귀애해주고 싶었다. 하루, 그리고 또 하루. 달과 해가 지는 서른 날이 열 번이 지날 때까지 내리 품어 그를 이루는 세포 하나하나 애정을 붓고 싶었다. 하여 온전한 세상에서 공포와 비명, 외로움과 고통의 한 자락도 스치지 못하게 하고 싶었다. 그를 옭아매는 부담과 책임에서 해방해주고 싶었다. 하여 그녀는 많은 것들을 준비했다. 설령 그것이 그의 뜻에 반한다 할지라도. 루이스. 오직 제 연인을 위해서.
때문에 트리비아는 그를 찾아야만 했다. 기어이 거리에 피가 흐르고 사방에서 악에 받친 비명들이 쏟아져 나올 때, 트리비아는 몸을 돌려 연합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곳에는 오직 침잠한 비통만이 머물렀다. 하지만 그녀는 온전히 슬퍼할 수도 없었다. 자신의 안배가 제대로 작동한 것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루이스는 숨결 한 점 남기지 않고 사라져있었다. 그래서 트리비아는 마지막까지 은신처를 가리고 선 동료의 홉뜬 눈을 감겨주지도 못하고, 황급히 그가 숨겨둔 아이들만 거두어 대피시킨 뒤 전쟁이 아닌 액자로 향했다.
“트리비아?”
액자는 미지였다. 그것을 건너는 것은 일종의 도박이었다. 하지만 트리비아는 확신했다. 그 너머에 자신의 연인이 있을 것이라고. 그리고 이곳은 그녀가 너머에서 찾은 서른여섯 번째 포트레너드였다.
“나 할 말 있어.”
“흐응. 난 못하게 한 적 없는데.”
“그게 아니라.”
루이스는 조급해 보였다.
“그래 알았어.”
“크흠, 흠. 좋아. 그러니까……. 트리비아 카리나양?”
루이스는 등 뒤에 숨겨두었던 꽃다발을 들이밀었다. 연인의 붉은 물든 얼굴처럼 향긋하고 매혹적인 장미였다. 장미는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꽃이었다. 청혼은 그 꽃과 함께 받고 싶다고 언젠가 루이스에게 말한 적 있었다.
“역시 안 되겠어.”
“트리비아?”
트리비아는 그를 사랑했다. 어떻게 놓을 수 있을까. 너는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전쟁을 끝내 모두에게 평화를 주겠노라 말했으나 트리비아의 평화는 루이스가 있어야 비로소 존재하는 것이었다.
“사랑해, 루이스.”
사실은 알고 있었다. 이번에도 아니라는 것을. 그저 조금 지쳐있었다.
“미안해. 자기는 나 때문에 홀로 헤매고 있을 텐데……. 외면하고 있어서.”
세계가 점멸했다. 트리비아는 창 너머로 시선을 던졌다. 짙게 내려앉은 안개가 거리에 가득했다. 조금 전까지 가득했던 새의 지저귐도, 초목의 신록도, 작은 인기척도 없는 회백색만이 창밖을 메웠다. 이 도시에 네가 없다면, 그래. 떠나야겠지. 그리고 다시 너를 찾아야지. 언젠가 보았던 밤하늘의 수많은 별처럼 액자는 무수한 거리를 품고 있었다. 트리비아는 창백하게 질린 서른여섯 번째 루이스를 보았다.
“괜찮아. 나는 네게 직접 듣고 싶거든. 그러니 다음엔, 꼭 만날 거야.”
다정한 속삭임에 루이스는 무너져 내렸다. 그는 먼지처럼 바스러졌다. 그러나 트리비아의 마음을 그처럼 사라지지 못했다. 서른여섯 번을 겪어도 여전히 설운 고통을 간신히 삼켜내야 했다. 그러자 그녀의 굽은 등을 다독이는 목소리가 들렸다.
응, 기다릴게.
다급히 고개를 들었지만 서른여섯 번째의 환영은 존재하지 않았다. 오롯이 홀로 남은 방 안에는 액자의 연인이 처음으로 남긴 대답만이 고여있었다. 트리비아는 그 문장을 삼키듯 숨을 크게 들이켰다.
“아무래도 안개에 너무 오래 취해 있던 모양이야.”
이제 작별을 고할 시간이었다. 달콤한 추억, 안락했던 환상과 돌아갈 액자 밖의 세계 그리고 이 도시.
트리비아는 닫힌 창문을 활짝 열고 날개를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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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 아저씨에게"에 남겨주신 댓글 중 하나를 보고 쓴 글입니다.
덕분에 저는 무척 즐겁게 썼는데 어떨지 모르겠네요.
저번 글을 안보신 분들도 알 수 있게끔 쓰고 싶었는데 불친절한 글이 된 것 같아 좀 불안하기도 합니다ㅠㅠ
생각외로 많은 분들이 좋아해주셔서 혼자 감사의 마음을 담아 써봤습니다.
읽어주신 분들과 댓글, 추천 주신분들 감사합니다.
+본문에 나온 눈을 홉뜬 동료는 죽은 이글이며 구출된 아이들은 엘리와 피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