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첫 눈이 내린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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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28 03:54:28
어두움이 가라앉아 온 세상을 감싸고 있는 한 겨울의 늦은 저녁
거리에는 가로등이 자그마한 불빛을 발하고 추운 날씨에 온 몸을 꽁꽁 감싼 사람들이 거리를 바삐 걷고 있었다
그런 사람들 와중에 두 사람이 걷고 있었다
루이스, 그리고 트리비아는 크리스마스 이브를 맞이해 오랜만에 데이트 중 이었다.
평소 서로의 업무에 시달려 같이 동거를 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집 안에서밖에 볼 수 없던 두 사람이지만
오늘만큼은 서로 약속을 하고 시간을 낸 것이다.
두 사람은 말 없이 거리를 거닐었지만 평소와 다르게 함께 있다는 사실에 기쁨이 충만하게 차올라 있는 상태.
항상 함께 있었지만 이런 데이트는 오랜만이기에 두 사람은 누가 봐도 얼굴에 티가 날 정도로 기쁨이 만연해 있었다.
평소와 같은 옷을 입었지만 오늘은 특별히 쥐색의 목도리를 목에 감싸고 있는 루이스
그리고 평소와 다르게 붉은 코트를 입고 검은 스타킹과 무릎 밑까지 오는 부츠를 신고 도도한 모습의 트리비아.
마치 처음 만나 첫 데이트를 하는 것 처럼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해 흥분과 기대감에 잔뜩 상기된 모습이었다
"저기, 저기야." 루이스가 손가락으로 겉보기에도 매우 고급스러운 느낌의 레스토랑을 가리켰다
오늘을 위해 특별히 한 달도 전부터 예약을 해둔 것이리라, 트리비아는 그렇게 생각하며 걸음을 맞춰 천천히 걸어갔다
레스토랑 안은 화사한 느낌의 매우 아름다운 샹들리에가 눈부신 빛을 발하며 두 사람을 맞이했고
포근한 느낌의 공기와 향긋한 음식의 냄새가 두 사람의 기분을 더욱 기쁘게 만들었다
"예약하신 분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루이스 입니다"
"예, 확인되었습니다. 자리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단정한 복장의 웨이터가 두 사람을 자리로 안내했다. 겨울밤 야경이 보이는 창가 자리에는 미리 준비된듯 식기와
냅킨이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루이스는 주문을 한뒤 물을 한 모금 마시고 조용히 야경을 바라보았다. 트리비아는
주위를 잠시 둘러보는 듯 하더니 역시 마찬가지로 창 밖의 야경을 바라보았다
"예쁘네." 트리비아가 야경을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
"응. 예쁘네." 루이스는 트리비아의 말에 역시 조용한 말투로 대답했다
이윽고 주문한 요리가 나왔고 두 사람은 역시 아무말 없이 식사를 시작했다. 루이스는 새끼양 로스구이를 먹었고
트리비아는 농어 훈제 요리를 먹었지만 그런건 아무 상관이 없었다. 두 사람 사이에 식사는 그저 본래 있는 예정을
위한 준비운동 같은 개념 일 뿐, 두 사람은 이후 있을 일에 대해 기대감으로 머릿속이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요리의 맛은 확실히 뛰어났기에 두 사람은 속으로 약간 감탄하면서 천천히 각자의 음식을
입으로 조금씩 넣고 그 고기의 육질을, 그리고 농어의 향긋한 향을 맡고 느끼며 맛보고 감상했다
식사가 끝나자 루이스는 레모네이드를 주문해서 한 모금만 마셨으며 트리비아는 디저트를 먹진 않았다. 이따금씩
두 사람의 눈길이 마주쳤는데 그럴때마다 두 사람은 조금씩이지만 확실하게 심장 고동소리가 커져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테이블 위로 일렁이는 촛불의 열기가, 약간 아이보리색의 은은한 느낌의 테이블 커버가, 그리고 주위와 밀폐된
이 공간이 어쩌면 두 사람의 고동소리를 더욱 더 크게 만들었을지도 모르리라.
허나 그 소리를 감출 수 없고 두 사람 간의 미묘한 긴장과 기대의 분위기를 서로 눈치채지 못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트리비아의 얼굴이 조금씩 붉게 달아오르고 루이스는 마른 침을 삼키며 그렇게 식사는 끝을 고하였다.
남은 것은 하나 뿐
레스토랑을 나오자 차가운 바람이 다시 두 사람의 곁을 애워쌌지만 오히려 이런 상황에 그런 차가움 쯤이야 시원한
정도밖에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그 정도로 두 사람은 한 가지 생각으로 머릿속이 가득 차 있었고 그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 할 수가 없었다.
허기를 해결한 두 사람은 천천히 몸에 에너지가 차오른다. 수면욕은 아직 찾아오지 않는다. 트리비아는 살짝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루이스를 곁눈질로 바라보았다. 그 순간 역시 루이스도 트리비아를 바라보고 있었고 두 사람은 본의아니게 서로 또 눈을 마주치게 되었다.
하늘도 이들을 축복하는 것인지, 아니면 일반적인 자연적 기후현상이었을 뿐이었는지는 모른다.
두 사람의 눈이 마주친 그 때 시선 사이로 눈송이 하나가 하늘거리며 그 공간을 천천히 활공했다. 자연스럽게 둘은 그
눈송이에게 시선이 옮겨졌고 다시 하늘을 바라 보았을 때는 이미 온 세상이 희뿌연 눈가루로 뒤덮여 있는 뒤였다.
"첫 눈... 이야." 트리비아가 조심스럽게 입김을 내뱉으며 말했다.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될 것 같네. 예쁜걸." 루이스 역시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어느새 찬 바람은 멎었고 세상은 눈송이로 천천히 새하얗게 물들어 갔다. 어떤 이는 미리 예상했다는 듯이 우산을
펼치고 걷기도 했다. 그리고 루이스와 트리비아 처럼 눈이 내리는 광경을 보며 말 없는 감상에 빠져 있는 이도 있었다.
"이왕이면 따뜻한 곳에서 이 광경을 계속 볼 수 있으면 좋겠어."
"마침 널 위해 그런 곳을 알아 봐 둔 곳이 있지. 갈까?" 루이스는 트리비아에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트리비아는 잠시 루이스를 바라보더니 살짝 미소를 지으며 루이스의 손을 잡고 나지막히 대답했다
"그런 곳이 있다니, 그럼 한번 가볼까?"
트리비아의 말을 듣고 난 뒤 루이스 역시 얼굴에 살짝 미소를 띄우고 두 사람은 다시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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