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팬픽] 잿더미 ~ 태울 수 없는 심장 ~ 1 (미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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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16 03:37:02
「 그깟 자존심, 그깟 신념, 그깟 사람, 그깟 사랑이라고도 할 수 있어.
하지만 그것들을 빼면 사람에게는 무엇이 남지? 」
- 달이 밝은 밤. 포기할 줄 모르는 그녀에게, 카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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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살아온 이야기는, 그다지 아름다운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가장 추례하며 비참하며 존중받을 가치가 없는 바보같은 사람의 이야기.
돌아보지 않았던 시절의 이야기를 하며, 처음으로 후회라는 걸 해봤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얼굴을 손으로 감쌌다. 고개를 숙이자 취기가 아지랑이처럼 몸을 휩쌌다. 술기운이 갑자기 확 올라와서 생각의 초점이 잡히지 않았다. 해야 할 말이 있었는데... 머리가 자꾸 어지러워진다. 지금까지 못했던 그 말을, 지금이야말로 해야만 했다. 눈을 감은 지금 말하지 않으면 영영 다시는 말하지 못할 것 같았기에.
지금까지 입에서 생각나는대로 마구 말하고 있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대답은, 단 한마디도 들려오지 않았고 귀뚜라미 소리만 달이 뜬 밤을 가득 채웠다. 아무런 대답도 없는 그가 괜히 원망스러워서, 귀뚜라미 소리마저 들리지 않았으면 하고 속으로 바래본다. 그가 만들어낸 침묵에 수만 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침묵의 무게는 견뎌내기에 너무 무거웠다. 결국, 나는 또 대답을 기다리지 못하고 던지듯 한 마디를 더 내뱉았다.
"이런 나를, 어떻게 생각해요?"
무엇을 기다리는지, 처벌을 기다리는 죄인처럼 나는 그 말로 완전히 얼어 버렸다.
대답이 또 들려오지 않을 거라는 건 알고 있었다.
왠지 모르게 한 가지 생각만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역시, 나는 안 되는구나.
탁, 하고 무언가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순간 놀람에 어깨가 살짝 흔들렸다. 지나치게 긴장한 탓일까.. 정적을 깨는 한 줄기의 소리에 눈을 들어 다시 앞을 본다. 빈 위스키 잔이 눈에 들어온다. 많은 유리 그릇들이 정리되지 않은 나무 탁자도 보인다. 흐릿한 시야를 좀 더 들어 앞을 바라봤다. 아직 빈 술잔을 채 손에서 놓지 않은 중년 남자의 모습이 보인다.
....무심한 사람.
괜히 화가 나서 그의 손에서 술잔을 낚아챘다. 비틀거리며 탁자 위의 위스키 술병을 붙잡아 그의 술잔을 원망으로 넘치도록 따른다. 가득 찬 잔을 집어들어 그의 손에 콱 다시 쥐어 주었다. 그는, 술이 그의 손에 튄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여전히 아무런 힘도 감정도 없이 무심히 내 손의 술잔을 붙잡았다. 괜시리, 술잔을 쥔 손을 놓지 못하고 그의 손을 꽉 붙잡았다. 나쁜 사람. 나쁜... 정말 나쁜 사람....
그의 거친 손에서 한기가 느껴졌다. 나를 잡아주지 않는 그 손의 한기를, 조금 더, 조금만 더 끌어안고 있고 싶었다.
하지만, 왜일까. 나쁜 사람 이라는 말만 수없이 머릿속에서 되뇌이며 나는 그의 손을 가만히 놓아 버렸다.
"한 잔 더 들어요."
하며 나는 그가 기다릴 새도 없이 내 잔을 가득 채워 훔치듯 한 잔을 더 비워버렸다.
여전히 그의 눈을 바라볼 용기는 나지 않았다.
갑자기 몹시 무력해진 기분이 들었다. 바보스러움에, 탁자에 고개를 떨궜다. 웃음인지 울음인지 알 수 없는 것이 속에서 올라왔다. 최대한 딸꾹질로 보이게 노력하며, 나는 그렇게 탁자에 엎드려 끅, 끅 거리며 감정에 가득 취해 버렸다.
정말..
이 남자가 정말 나한테 이럴 수 있는 걸까?
당신은 나에게 아무런 생각이 없을 리가 없어.
카인, 그래. 그게 당신의 이름이었지.
당신은 나를 미워할 거야.
나는 쏴 죽여도 모자랄 년이니까.
그런데
...나는 정말 이 남자에게 아무것도 아닌 걸까?
고개를 살짝 들어서 잠시 내 손을 바라보았다.
한 순간에 많은 단어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재앙, 파괴, 마녀, 마귀, 귀신, 악마, XX, XX, XXXX...
단어들을 읊는 동안 한 순간에 눈 언저리가 시렸다.
한 순간 생겨난 강렬한 빛 때문에 눈앞이 얼룩덜룩했다.
당황해서 왼팔로 얼른 눈가를 덮었다.
왜 흘렀는지도 모를 눈물을 닦아낸 뒤 다시 오른손을 바라보았다.
마녀의 수정구가 딱 이렇게 생기지 않았을까. 둥그런 흰색 수정 모양 테두리 안에 전설 속의 용의 숨결과도 같은 주홍빛 불의 회오리가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화염구의 크기는 작았지만 열기는 얼굴까지 전해질 정도로 강했다. 열기가 얼굴에 닿자 문득 마음 한쪽이 꺼지는 것 같이, 갑자기 어깨에서 힘이 쭉 빠졌다.
그래, 이게 나였지.
이름조차 불리우기 힘든
재앙의 불꽃.
내 앞에 있는 당신은 나를 어떻게 생각하지...?
아무렇지 않다고 얘기할 수는 없을걸.
난.. 당신의..
원수... 니까.
원수라는 단어를 머릿속에 올리자 순간 몸이 오한을 일으켰다.
약하게 떨리는 팔을 팔짱을 껴 맞댄 채 그에게 들키지 않게 조용히 다시 고개를 숙였다.
고개를 푹 숙인 채로 그와 처음 이 술집, 야외 테라스로 들어온 때를 떠올려본다.
낡은 코트를 벗지도 않은 채 그는 자리에 앉아서 담배에 불을 붙였다. 연기를 한 모금 훅 불며 그는 노을로 가득한 하늘을 지긋이 먼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 모습을 곁눈으로 슬쩍 본 후 메뉴판을 덮고 종업원에게 소리를 쳤다.
"이거랑, 이거랑 이걸로 가져와. 알아들었어? 확인할 필요 없으니까 빨리 가져와. 냉큼!"
그는, 내가 왜 종업원에게 화를 내는지 알았을까?
그 후로도 계속 먼 곳만을 바라보고 있었으면서.
자리에 앉아서 술이 나온 뒤로는 계속 술잔을 주고받았다. 아니, 정확히는 내가 그의 잔과 내 잔 모두를 따랐다. 그가 따를 때까지 계속 내가 따를 생각이었는데.. 결국 방금 잔도 내가 따르고 말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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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휴 역시 '그녀' (눈치 빠른 분이라면 알아채셨겠죠?) 1인칭으로 쓰는 건 쉬운 게 아니네요.;;
구상해 둔 게 있는데 저번처럼 한번에 몰아서 쓰면 너무 어려울 것 같아서 부득이하게 편수를 좀 나눠보기로 했습니다.
댓글 3개 이상 달리면 이어서 달리겠습니다! ㅠㅠ
(라고 하지만 과연 이 새벽에 달아주실 분이 있을런지...)
P.S. 대문짤 구합니다! ㅠㅠ
이야기를 계속 쓰고싶은데.. 뭔가 대문 이미지가 없으니 허전하네요..
짤 그려주시면.. 원하는 이야기, 아니 아무 이야기든
그 분께 이야기를 바치겠습니다.
아니 뭐 어찌됐든, 계속 가끔씩 팬픽션을 쓰고 싶은데
짤 하나만 그려주셔요... 매 화 대문그림으로 걸어두겠습니다... 구걸구걸 굽굽
그럼 짧지만 재미있게 읽어주시구 댓글 하나씩만 꼭꼭 남겨주세요 ㅠㅠ
참 그리고 이건 짤막하지만 예전 글 홍보입니다. :)
타라하고 샬럿이 나와요 ㅎㅎ
http://cyphers.nexon.com/cyphers/article/art/topics/52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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