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yphers

  • [다무틀비] 칼집(Wating)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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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스트바스터 [66급]

2014-11-19 10:31:19

* 다이무스 홀든트리비아 카리나연인이라는 것을 전제로 쓴 짤막한 소설 모음입니다. 

  싫으시다면 굳이 댓글로 한 마디 남기지 마시고 [뒤로가기]를 눌러주시기를 요청하는 바입니다.

** 다무틀비 손바닥글 모음 1탄도 있어요! 묘하게 이어진 것도 있으니 보고 오시면 더 좋습니다.

*** 댓글로 "루이틀비"를 포함한 타커플링 발언 하지 마세요. 경고합니다.

**** 스크롤의 압박이 다무틀비에 대한 깊은 애정만큼이나 대단합니다. 

  긴 글 싫은 당신에게도 역시나 [뒤로가기]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자매품으로 [백스페이스(←)]

***** 드문드문 그림이 나오기도 하는데 소설 삽화는 아닙니다. 다무틀비 영업용 광고 같은 거예요. (...)



당신의_상상력을_자극하는_미방.jpg




  오늘따라 시선이 동선을 뒤쫓듯 집요하게 달라붙는다. 다른 사람이라면 있으나마나 무시했을 테지만 다이무스의 눈빛은 언제나 올곧고 강렬하여 지나칠 수 없다.


  “왜 그리 봐?”


  소파에 앉아 있는 그의 앞으로 사뿐사뿐 다가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는 눈부시기라도 한 듯 약간 눈을 가늘게 뜨고 올려다보다가 천천히 손을 올려 뺨을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너는 아름답군.”


  뜬금없는 찬사와 녹아내리듯 상냥한 미소에 낯간지러워 잠시 시선을 헤맨다.


  “여자를 유혹하는 대사 치곤 너무 꾸밈없는 거 아냐?”


  수줍음을 얼버무리듯 허벅지 위에 살짝 걸터앉으며 입술 가까이에서 물었다.


  “나는 사실을 말할 뿐이다. 너보다 아름다운 피조물은 보지 못했다.”

  “…….”


  한쪽 팔로 허리를 휘감아오며 태연하게 하는 말에 말문이 막혔다.


  “귀엽군.”


  마땅한 반응을 고르지 못해 망설이는 걸 보며 그가 작게 웃음을 흘렸다.


  “……당신, 건방져.”


  토라진 듯 입을 샐쭉이자 부디 용서하라는 듯 입가로 입을 맞춰왔다.

  어긋났던 입술은 서로 마주 웃어버리고는 이내 겹쳤다.


(+)


  “이 칼자국은 어떻게 해서 생겨난 거야?”


  트리비아는 다이무스의 왼쪽 관자놀이에 있는 십자 흉터를 어루만졌다.


  “가문에서 정통 검술을 이어받는 이들에게 새기는 표식 같은 거다.”


  다이무스는 트리비아의 상냥한 손길에 미소 지으며 손을 포갰다. 


  “왠지 아깝네. 이렇게나 멋진데.”

  “…….”


  다이무스가 슬며시 눈을 돌리자 트리비아의 눈꼬리가 장난스럽게 휘었다.


  “지금 수줍은 거야?”

  “…….”


  고집스레 딴 데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는 다이무스를 보며 트리비아는 가볍게 웃음을 터뜨렸다.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 그의 두 뺨을 가볍게 잡아 빈틈없이 자신에게로 돌렸다. 확인사살하듯 정면에서 솔직한 감상을 건넸다.


  “귀여워라.”


  다이무스는 미간을 찡그렸지만 이미 걷잡을 수 없이 달아오른 얼굴로는 평소 그에게 공기처럼 감도는 카리스마 같은 건 찾아볼 수 없었다.


  “……복수인가.”

  “아니?”



― 아름다움(Praise)

Drawn by. 비프론즈/ Copyrightⓒ. All Rights Reserved.​


  트리비아의 기척에는 전조가 없다. 있음과 없음의 중간항이 원래 존재하지 않는다고는 해도 그 경계를 이만큼이나 뚜렷하게 보여주는 사람은 그녀 말고는 아마 없을 것이다. 실력을 자부하는 검사로서도 쉽게 읽지 못한다. 그러나 놀라지는 않는다. 머리로 인식하기도 전에 몸이 이미 단박에 그녀임을 알고 받아들인다. 차가운 팔이 갑자기 뒤에서 부드럽게 감겨오자 미소가 절로 떠올랐다. 그저 친숙하고 사랑스럽다.


  뒤돌아보지 말라는 듯 다소 힘이 들어갔던 팔에서 비로소 긴장이 풀렸는지 느슨해졌다. 잠시간 더 정면을 말없이 응시하고 있다가 부드럽게 팔을 잡아 내리며 뒤로 돌아섰다. 무표정한 얼굴에는 타인이 자신의 무언가를 엿보게 두지 않겠다는 단호함이 깃들어 있었다. 속내를 알 수 없는 건 평소의 일이지만 그녀는 지금 더욱 무장하고 있다. 텅 빈 상태가 아니라 혼란을 감추려 애쓰고 있다.


  무슨 일이라도 있었던가. 걱정이 되지만 한편으로는 기쁘다. 고통을 홀로 삭이는 데 익숙한 그녀가 마냥 그림자 안에 혼자 잠겨들지 않고 그곳을 거치기만 하고 결국은 내게로 와주었다. 트와일라잇도, 그림자 안도 아닌 이 다이무스 홀든을 안식처로 택했다.


  그녀의 뺨을 어루만졌다. 무서울 정도로 고요하던 눈동자에 파문이 일었다. 손을 미끄러져 내려가 가녀린 어깨를 감싸안았다. 그녀의 손이 애처롭게 내 가슴팍을 붙잡는다. 고고한 그녀가 유일하게 약해지는 곳이 나라는 것에 감사하며 팔에 더 힘을 주었다.



― 위안(Shelter)



  ‘행복하다’라는 말을 풍경화 한 폭으로 옮긴다면 바로 지금 이 순간이 아닐까 한다. 스스로를 그림에 비유하기는 쑥스럽지만 이토록 수려한 자연과 지금 어깨에 가만히 고개를 기댄 채 살풋 눈을 감고 있는 그녀는 천혜의 모델이 되기에 합당하다.


  눈을 들어 보면 몇 걸음 앞에는 물새 몇 마리가 유유히 헤엄치는 호수가 있고 야트막한 활엽수림이 그 주변을 오밀조밀 감싸 안고 있다. 본가 저택 뒤에 있는 단련용 침엽수림 근처에 오직 철따라 모습을 바꾸는 계절을 완상하기 위해 마련된 작은 숲이다. 고요하고 아름답다. 지금은 그녀와 손을 부드럽게 마주잡고 함께 등을 기대고 앉은 커다란 벚나무가 특히 마음에 들어서 이맘때쯤이면 자주 찾고는 했다. 예전엔 잠시 시름을 내려놓고 평온에 잠긴다 그뿐이었지만 그녀와 함께 찾은 오늘은 행복하다라는 말로도 부족할 지경이다.


  검은 방 안 고정대 위에 얌전히 내려두고 왔다. 조리장이 평소보다 잔뜩 힘주어 만든 피크닉박스를 들고 그녀를 이곳까지 인도하는 길이 어찌나 설레고 충만했는지 숲길이 영영 끝나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행복이란 말로 부족하다면 감히 완벽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눈부심을 꺼리는 그녀라 양산을 챙겼지만 울창하기 시작하는 가지 틈새로 간질이듯 새어드는 빛은 싫지 않은 눈치였다. 그녀의 입가에서 미소가 번져 지워지지 않는다. 도시락을 나눠먹을 때도 구두를 벗고 얕은 물가에 발을 담글 때도 졸음에 겨운 지금도.


  느슨해진 것 같은 손에 약간 힘을 준다. 깍지의 결속이 강해진다. 그녀의 가냘픈 손이 좀 더 손아귀로 폭삭 들어오는 느낌이 퍽 좋다. 시선을 모로 내리자 그녀가 살짝 눈을 뜬 채 웃고 있다. 기쁜 듯이 휜 눈매가 아름답다는 핑계로 눈꺼풀 위로 입을 맞춘다. 아쉬운 듯 입술을 떼어내다가 그녀의 머리에 앉은 벚꽃잎을 발견한다. 무심코 빈 손을 들어 떨어내려다 도로 내린다. 그럴 필요가 없지 않은가. 그녀가 사랑스럽게도 어리둥절한 얼굴을 하자 무안해진 손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그녀의 뺨을 어루만진다. 따사로운 봄기운에도 아랑곳않고 차가운 뺨이 서늘해서 좋다. 마찬가지로 그녀는 내 손의 온기가 좋은 듯 빈 손을 들어 그 위로 부드럽게 포갠다. 서로의 눈빛이 겹치고 이내 얽혀든다.


  수도 없이 주고받은 입맞춤이지만 하고 싶은 마음은 처음처럼. 수줍게 드리워지는 그녀의 풍성한 속눈썹을 더 자세히 구경하듯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고개를 숙이는 와중 멈칫한다. 머리 바로 위 시야의 사각에서 무언가 불쑥 콧잔등 위로 하늘하늘 떨어졌다. 꽃잎일 것이다. 내려앉은 느낌도 별로 없는 불청객이다. 그녀가 완전히 고개를 들어서 보고는 작게 웃음을 터뜨린다. 부끄럽기도 하고 아깝기도 한 마음에 화풀이하듯 꽃잎을 떨어내려는 손을 그녀가 부드럽게 막는다. 쥐고 있는 손을 풀고 정면으로 옮겨 앉아 양손으로 내 어깨를 잡더니 서서히 얼굴을 가까이 한다. 은밀한 기대감을 입술에 얹은 채 눈을 감았지만 촉촉하고 차가운 감촉은 코에 살짝 닿았다가 금방 사라졌다.


  약간 미간을 찌푸리고 눈을 뜨자 그녀의 아무것도 칠하지 않아도 붉은 입술이 연분홍빛 꽃잎을 살짝 머금고 있었다. 마음을 쉽게 들키지 않는 깊은 눈동자에는 다소 장난스러움이 묻어난다. 그녀의 머리로 손을 뻗어 아까 떼어내지 않은 꽃잎을 집어 입술로 가져다댄다. 꽃잎의 감촉은 그녀의 입술과 무척 비슷하다. 부드럽다. 허나 아무리 대고 있어도 온도가 느껴지지 않는다. 차갑지만 이내 얽히고설키면서 달아오르는 그녀의 꽃잎에 비할 바가 아니다. 미련없이 살랑이는 바람에 꽃잎을 흩날려 보내고는 여전히 그녀의 입술 틈새에 있는 꽃잎을 집어낸다. 살짝 벌려진 입이 묘하게 자극적이다. 그녀가 내게 자극이 아닌 적은 없었지만.


  왼팔로 단단히 허리를 휘어감고 느긋이 입술을 쓴다. 다시 다물어진 입술이 손끝에 촉하고 닿았다 떨어진다. 손을 미끄러뜨려 그녀의 뒷머리로 가져가 머리칼을 쓰다듬는다. 확 끌어당겨 아까부터 간절히 원하고 있던 것을 손에 넣을 수도 있는데 이상하리만치 부러 애태운다. 다만 확실한 건 기다린 만큼 부추겨진 마음이 마침내 부딪친 순간 걷잡을 수 없을 거란 사실이었다. 한 번 터지기 시작하면 부끄러움도 모르고 삽시간에 제몸을 오롯이 드러내는 순결한 꽃망울처럼.


  그녀의 오른손이 가슴팍을 타고 내려와 왼켠에 자리한다. 그 섬세한 손길에 심장이 크게 튀었다고 생각한 순간 이미 그녀를 바닥으로 눕힌 뒤였다. 그녀의 눈동자를 보고 그 안에 비친 자신의 눈동자를 또 본다. 피차 광란의 봄을 품고 있었다. 그녀의 두 팔이 목을 끌어안는 것과 동시에 그녀에게로 빨려가듯 다가간다.


  하늘하늘 흩날리는 꽃잎을 감싸여 호수를 무시한 채 나무 그늘 아래에서 함께 헤엄쳤다.



― 춘정(Spring Love)



  똑똑. 늦가을 강우에 빗방울이 조금 거세게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인 줄 알았다. 무어라 생각할 것도 없이 그저 릴케의 시를 탐독하는 데 계속 주의를 기울였다.


  똑똑. 두 번씩이나 똑같은 소리가 들려온 데서 위화감을 느끼고 고개를 들었다. 빗줄기가 유리창에 부딪치는 소리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뚜렷하고 박자감마저 느껴졌다.


  ‘사람이 노크를 하는 것 같은 소리’라는 데에 생각이 미치자 득달같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창가로 다가갔다. 설마설마하는 마음이 배반당하기를 바라며 커튼을 홱 젖혔다. 비에 흐려진 창가 너머로는 새까만 야경만이 보여야 했다. 하지만 방에서 새어나오는 불빛에 익숙한 실루엣이 어른거리는 것을 보고 재빨리 창문을 열었다. 훈훈한 방 안으로 등골을 오싹하게 만드는 추위와 함께 빗방울이 후두둑 들이닥쳤다. 비 내리는 을씨년스러운 어둠 속을 트리비아는 흠뻑 젖은 채로 날고 있었다.


  왜 이런 날씨에 밖에 나와 있는지, 집은 어떻게 알고 찾아온 건지 과묵한 혀끝이 드물게도 온갖 질문을 퍼붓고 싶어 안달이었지만 미뤄두었다. 트리비아를 붙잡아 안으로 끌어당겼다. 힘없이 바닥에 두 발을 딛고 선 그녀가 곧 쓰러질 것만 같아서 한 손으로는 창문을 닫고 나머지 한 손으로는 그녀의 허리를 단단히 감싸 안았다. 온몸으로 얼기 직전의 싸늘한 축축함이 사정없이 스며들었다. 소름이 돋아 온몸의 털이 쭈뼛 섰다.


  온기에 닿자 비로소 지금 춥다는 걸 깨달은 것처럼 트리비아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겨울에 가까운 늦가을 비는 그렇잖아도 차가운 그녀의 몸을 더 싸늘하게 식혔다. 그녀는 원래 차갑다. 하지만 그 뿌리가 마냥 차갑지만은 않음을 알기에 이 쉽사리 녹을 것 같지 않은 냉기가 더 안타까웠다.


  마주 팔을 둘러오지도 않고 그저 껴안는 대로 가만히 가슴팍에 얼굴을 기대고 있는 트리비아의 표정을 살피고 싶었다. 슬며시 팔을 풀며 몸과 몸 사이의 거리를 벌리려고 했다. 이번에는 그녀가 등을 단단히 껴안으며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 그녀의 몸과 맞닿아있는 곳이 얼음을 대고 있는 것처럼 시렸다. 허나 빼앗긴 체온만큼 그녀에게 온기가 전해지고 있다는 점은 만족스러웠다. 젖어서 더 향기가 도드라지는 머리카락에 입술을 묻고 차게 식은 덜미를 어루만졌다.


  계속 이러고 있을 수는 없었다. 더 이상 젖은 채로 있다간 트리비아가 감기에 걸릴지도 모르는 일이다. 단호하게 트리비아의 어깨를 잡되 부드럽게 밀어내며 거리를 벌렸다. 평소에는 풍성하게 물결치며 왼쪽 어깨로 모아내리는 머리카락이 온통 젖어서 길게 가슴팍까지 늘어졌다. 새하얀 뺨과 목덜미와 쇄골에 물기 어린 채 달라붙어 있는 브루넷이 자극적이다. 허무가 깃들어 초점이 흐리지만 아름답기만 한 눈동자가 멀거니 다이무스의 눈을 마주보다가 스윽 바닥을 향했다.


  “……카펫이, 젖어버렸네.”


  아직도 트리비아의 옷자락에서는 서늘한 물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카펫 같은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뜬금없는 말이지만 그녀 나름의 사과임을 알 수 있었다. 좀처럼 솔직하게 사과하거나 잘못을 시인하지 못하는 자신과 똑 닮은 서투른 연인. 그것이 새삼 이루 말할 수 없이 사랑스러워 그녀가 여기 온 이유 같은 건 묻지 않아도 좋을 것 같았다.


  자기 의지로는 그 자리에서 움직일 생각을 않는 트리비아의 손을 잡아 욕실로 이끌었다. 더운 물을 틀자 싸늘한 욕실에는 금방 부연 김이 들어찼다. 갈아입을 옷을 가져올 테니 몸을 덥히라고 권하고는 나오려고 했다. 허나 붙잡는 것까지는 아니라도 옷자락을 섬약하게 잡는 느낌에 돌아보았다. 눈길이 얽혀들었다. 욕조 안으로 콸콸 쏟아지는 물소리를 들으며 여전히 식어 가라앉은 눈을 한동안 더 바라보다가 다이무스는 가볍게 이마에 입을 맞춰주고는 말없이 욕실을 나섰다.


  달칵 하고 문이 완전히 닫히는 느낌이 전해지자 문고리를 놓고 미간을 좁히며 주먹을 세게 그러쥐었다.


  언제나 타인을 범접하지 못하게 하는 고고함을 휘감고 있는 트리비아와 달리 너무나도 가녀리고 연약하게만 느껴진다. 비에 흠뻑 젖어 떨고 있는 몸을 따스하게 감싸주고 싶다는 마음의 한편으로 충동에 휩싸이는 자신을 부정할 수가 없다. 새파랗게 질린 피부 위로 뜨거운 입술을 억눌러 바알간 열꽃을 한가득 피우고 싶다는 욕망이 제게도 있다는 사실 자체보다 하필 지금 그것을 생생히 자각하고 있다는 사실이 괴롭다.


  방금 전까지 읽고 있던 루 살로메를 향한 릴케의 뜨거운 연정으로 가득한 시구가 어지러운 마음에 섞여들었다. 그것은 지금 곁에 부재하는 이를 향한 사모였을지 모르나 지금 자신에게는 손만 뻗으면 닿을 거리에 사랑이 있었다. 가까운 그리움은 충동을 억제할 수단을 처음부터 전부 없앤 채로 몸도 마음도 부추기는 것만 같은데.


  고개를 세차게 가로젓고는 드레스룸으로 어쩐지 뻣뻣한 발걸음을 옮겼다. 젖어버린 옷을 벗어 갈아입고 트리비아가 입을 만한 옷을 적당히 고르려고 했다. 막상 옷장을 들춰보니 정장 일색에 여벌 임무복이 거의 다였다. 그 중에서 그나마 편해 보이는 것을 집어 들기는 했지만 셔츠라면 모를까, 바지는 너무 커서 그냥 흘러내릴 듯했다. 이 야심한 시각에, 아니 시간을 떠나서 차마 집안 여인들의 옷을 빌릴 엄두는 나지 않으니 선택권을 없었다. 아예 없는 것보다는 낫겠거니 잘 다려진 옷을 대충 개켜 욕실 문 발치에 두었다.


  목욕만으로는 충분치 않을 것 같아서 트리비아의 몸을 한결 따뜻하게 해줄 만한 차를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이 시간 자기 방 안에 함께 있다는 사실이 무던히도 의식되는 방에서 도망치듯 나왔다. 어렸을 적 단련중에 걸핏하면 사라져서 몰래 과자를 훔치러 숨어든 이글을 찾으러 갔을 때를 빼고는 간 적 없는 저택 조리실을 찾았다.


  요리는커녕 차도 제 손으로 타본 적 없는 다이무스로서는 막연한 걸음이었다. 다행히도 다음날 아침 재료를 밑손질하는 당번 메이드 몇이 있었다. 숨죽여 키득거리며 수다를 떨고 있던 메이드들은 망설인 헛기침 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 제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언제나 집안 곳곳을 매의 눈으로 살피며 호령하는 집사 바스티안인 줄 알았던 것일까. 아니면 너무나 의외의 인물이 납시었기 때문일까. 원하는 게 있다면 호출하면 그만인데 직접 온 게 아무래도 이상하게 비칠 것이다. 그러나 그녀가 있는 한 누군가를 방에 들일 수는 없었다.


  당황함이 역력한 얼굴로 혹시 필요한 거라도 있으신지 묻는 연륜 있어 보이는 메이드에게 몸을 따뜻하게 해줄 수 있는 차를 준비해달라고 했다. 그들은 곧바로 손발을 척척 맞춰 금방 훌륭한 티 세트를 완성해 쟁반 위에 보기 좋게 늘어놓았다. 다이무스는 별 다른 말 없이 쟁반을 들고는 서둘러 그곳을 떴다. 메이드들이 눈치 있게 굴어주었다. 직접 이곳에 걸음했다는 것은 직접 들고 가야 할 만한 사정이 있음을 뜻한다는 걸 암묵적으로 이해한 듯했다. 분명히 그것을 가지고 별의별 이야기꽃을 피울 테지만 지금은 그런 데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방에 돌아와 보니 벌써 목욕을 끝냈는지 트리비아는 아까 들어온 창문 앞에 가만히 서있었다. 멍하니 차가운 유리창 표면에 한손을 얹은 채 비 내리는 풍경을 쳐다보고 있는 뒤태를 보고 다이무스는 할 말을 잃어버렸다.


  ……미치겠군.


  그런 말이 절로 목구멍까지 차올라 부러 입을 꾹 다물었다. 역시 바지는 입으나 마나였는지 트리비아는 그저 검은 셔츠 하나만 걸치고 있었다. 검은색과 대비되어 그 아래로 쭉 뻗은 매끈한 흰 다리가 눈이 부실 지경이었다. 그러나 카펫을 밟고 선 맨발은 시려 보였다. 


  다가가 창턱에 쟁반을 내려놓았다. 품위 있는 행동거지는 아니지만 억지로 창가에서 떼어놓고 싶지는 않았다. 홍차를 먼저 따르고 우유를 부었다. 단 것을 좋아하지 않는 그녀를 생각해 설탕은 빼고 내밀었다. 다시 빗속으로 나가고 싶어하는 것만 같은 아득한 눈길이 찻잔으로 가 머물렀다. 너무 커서 손가락만 살짝 보이던 소매를 비집고 나온 하얀 손이 느릿느릿 잔을 집었다. 붉은 입술은 컵 주둥이를 살포시 머금었다. 따뜻한 차가 한기가 덜 가신 몸속에 흘러들자 그녀의 어깨에서 사르르 힘이 빠지는 게 보였다. 


  침묵만이 흐르고 홍차의 마지막 한 모금까지도 체온이 되어 사라지자 트리비아는 잔을 내려두었다. 창밖으로부터 천천히 시선을 돌려 옆을 지키고 선 다이무스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품이 큰 셔츠 가운데서도 고스란히 드러나는 유려한 실루엣보다도 그녀가 자신의 옷을 걸치고 있다는 사실이 설명 못할 흥분감을 선사했다. 악마가 찾아와 유혹하더라도 넘어가지 않을 자신이 있는 철혈의 다이무스지만 지금 눈앞에 있는 건 검과 명예에 걸고 지키기로 맹세한 존재다. 그런 그녀의 사소한 표정, 몸짓 하나에도 서툰 감성은 자극받아 사춘기 소년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맛본다. 헌데 지금 이 순간 감정보다 더 큰 본능에 휩쓸려버릴 것만 같아 두렵기까지 했다.


  다이무스는 트리비아의 시선을 일부러 피하며 취침등이 있는 침대 곁 자그마한 협탁 안에서 실내 슬리퍼를 꺼내들었다. 트리비아의 발치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한쪽 발목을 살짝 그러쥐고 들어올렸다. 목욕물에 한 번 들어갔다 나온 몸인데도 여전히 착잡하다. 차가운 체온 때문에 손아귀에서 그녀의 복사뼈 윤곽이 더 도드라졌다. 나머지 한쪽 발도 마저 신기고 일어나려 했으나 제지하듯 섬약한 손길이 뺨으로 내려앉았다. 이끌리듯 올려다보았으나 그녀는 미련없이 손을 거두고 뒤돌아섰다.


  사뿐사뿐 카펫 위를 걸어가 트리비아는 침대 위에 걸터앉았다. 침대 매트리스가 약간 흔들렸다. 그녀의 손은 괜스레 침대 시트 위를 맴돌았다. 다이무스를 보지는 않고 이불 주름을 이유없이 펴는 제 손길을 무심히 내려다보았다.


  앞뒤 생각은 모두 생략되었다. 다이무스는 어느새 트리비아의 두 손목을 붙잡아 매트리스 위로 억누르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트리비아는 다이무스와 달리 전혀 열에 들뜨지 않은 눈으로 가만히 그를 올려다보다가, 고개를 틀어 왼편에 약간 부풀어 오른 시트에 코를 묻고 비비며 숨을 들이켰다.


  “당신 향기가 나.”


  트리비아는 교태부리지 않는다. 다이무스가 스스로 흔들릴 뿐이었다. 다이무스는 트리비아의 목덜미에 고개를 묻고 무방비하게 노출된 살결로부터 물씬 풍겨오는 트리비아의 체취를 마음껏 들이켰다. 정신이 아찔하다. 묵은 갈증이 치밀어 현기증이라도 나는 것처럼. 


  “네 향기로, 묻어버려라.”


  귓가에 나지막이 속삭이고는 입술을 탐하며 그저 한 겹에 지나지 않은 셔츠 단추를 끌러 내렸다. 셔츠 단추의 감촉이 익숙하다는 점이 희열을 더했다. 짙은 암록색 시트 위에 벌려진 검은색 셔츠를 깔고 누운 몸은 온통 희고 붉다.


  다이무스는 트리비아의 공허와 고독을 이해하지 못한다. 아니, 이해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것이 이해해주기를 바라는 것도 아니며 그녀 스스로도 어찌할 수 없는 것임을 알았다. 자신이 곁에 있어도 소용없는 무언가를 그저 그 자체로 존중할 뿐이다. 그것이 최선이라는 사실이 못내 안타깝지만 지금 그 허무 속에서도 그녀는 이곳을 찾아주었다. 마냥 그 사실이 기뻤다.


  신음과도 비슷한 감탄이 입술 새로 흘러나왔다. 도무지 익숙해질 수 없을 것 같은 트리비아의 아름다움은 아마도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도 수명을 단축시키는 힘이 있을 것 같았다. 그에 휘둘려 침식되어가는 것은 황송한 중독성이 있었다.


  지금 다른 것은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그저 그녀의 향기를 이 방에 만발하게 해 그 속에 함께 파묻히고 싶었다.

 


― 충동(Sens)



  보고 있어도 아무런 재미도 없을 텐데.


  안락의자에 앉아 눈을 감고 황혼녘을 만끽하고 있던 트리비아가 의식하지 않으려야 안 할 수가 없는 강렬한 시선을 보내오자 다이무스는 생각했다.  


  단련을 끝내고 돌아와 다이무스는 흘린 땀을 말끔히 씻어 내리고는 황혼이 드는 거실 바닥에 정좌했다. 몸을 매일 움직이지 않으면 검사로서의 감이 둔해지는 것처럼 한몸인 검도 매일 손질하지 않으면 무뎌진다. 칼집에서 칼을 빼지 않은 채로 나무망치를 사용해 칼자루를 빼내고는 부드러운 천으로 잘 닦은 뒤, 숫돌가루를 칼날 곳곳에 뿌려 한 치의 티끌마저도 다 흡수시키고는, 마지막으로는 정향유를 발라서 닦아내는 경건한 일과. 다이무스에게는 반드시 해야 하고 소소한 만족감을 주는 일이지만 다른 이에게는 그다지 재미있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트리비아는 다이무스가 검을 손질하는 모습을 그윽한 눈길로 주시했다.


  얼룩 하나 없이 깨끗해진 칼날을 앞으로 겨누고 황혼에 비춰볼 때 드는 이 자족감에는 그 무엇도 함부로 개입할 수 없다. Gold Schärfe, 휘두를 때는 은빛 섬광을 내뿜지만 지금 저녁에서 밤으로 향해가는 이 시간에 칼날은 찬란한 황금빛을 머금었다. 자신의 태도가 발하는 은빛은 속도와 과정을 나타내지만 금빛은 여유와 결과를 말해주었다. 빠르게 휘둘러 베야 할 것들을 베어낸 뒤에 검을 손질하는 것은 이 무쇠로 된 벗에게 잘했다며 포상을 주는 일이나 다름없었다. BLADE, 영국 정부가 멋대로 붙인 코드네임이지만 검사로서 그 이상 가는 이명을 얻기도 힘들 것이다.


  “……아름다워.”


  다이무스는 자신의 생각을 대신해서 표현해주는 아름다운 목소리에 칼에서 눈을 뗐다. 트리비아는 어느새 안락의자에서 내려와 가만히 칼을 바라보고 있었다. 칼날 표면으로부터 반사되어 나오는 빛이 약간 눈부신 듯 눈을 가늘게 뜨고 있지만 밤의 여왕은 이 빛을 싫어하지 않았다. 단순한 호기심 같은 게 아니라 검의 주인인 다이무스만큼이나 진지한 눈길로 황금빛 칼날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정성스레 손질한 칼날에 실수로도 닿지 않도록 조심하며 트리비아는 검신을 따라 손을 움직였다. 검에서 뿜어져 나오는 아름다운 빛을 붙잡으려는 듯 섬세하면서도 천진난만한 손길이다.


  “한 번……들어봐도 돼?”


  칼날 끄트머리까지 갔다가 다시 칼자루와 만나는 부분까지 돌아온 가냘픈 손이 칼자루를 쥔 손등 위에 망설이듯 포개졌다. 검사는 자기 칼을 함부로 남의 손에 들리지 않는다. 부러지지 않는 한 한 번 선택한 검은 평생의 동반자로서 죽음까지 함께 한다. 아버지와 형제들조차도 서로의 무기에 손을 대는 것은 검도에 어긋나는 행위였다. 다이무스에게 검이란 특별하다는 말로도 이루 다 표현하지 못하는 것임을 알기에 트리비아의 부탁에서 처음부터 체념이 묻어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다이무스는 자신과 눈을 마주치지는 않고 살풋 눈을 내리깔고 있는 트리비아를 응시하다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앉은 그녀에게 손을 내밀자 어리둥절한 얼굴을 하면서도 그 손을 잡고 섰다.


  왼손에 태도를 바꿔 쥐고 트리비아의 뒤에 바싹 붙어 서서 오른손으로 오른손을 감싸 잡았다. 아주 천천히 칼자루를 트리비아의 손 위에 올려놓으며 양손으로 칼자루를 쥔 트리비아의 오른손을 단단히 감싸 잡은 채로 칼날이 앞으로 겨누어지도록 했다.


  다이무스가 굳게 잡아주고 있음에도 손아귀로 생생하게 느껴지는 엄청난 무게에 트리비아가 흠칫했다. 칼자루를 쥔 손에 더 힘을 들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어려운 부탁을 들어준 것에 대한 경의를 표하는 듯한 진지한 태도에 그녀의 뒤에서 슬쩍 미소 지었다.


  “당신은 이렇게 무거운 걸 늘 묵묵히 휘두르는구나.”


  감탄이라고 하기에는 별로 긍정적인 것 같지 않고, 탄식이라고 하기에는 또 부정적인 것도 아닌 한숨 섞인 말이 그녀의 입술에서 흘러나왔다. 그 말에 섞인 감정은 복잡하고도 미묘했다.


  “무겁지?”

  “가볍지는 않다.”

  “……싸울 때조차도 당신은 단련하고 있는 걸까.”


  뒤에 있기에 볼 수는 없지만 아까 전 아름답다고 말할 때와는 사뭇 다른 눈빛으로 트리비아는 찬란하게 빛나는 칼날을 바라보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아아, 그렇다. 그녀는 지금 미안해하고 있었다. 예상을 훨씬 웃도는 검의 무게가 그녀에게는 다이무스가 짊어져야 할 부담으로 여겨지는 듯했다. 이 무거운 검으로 지켜야 할 것들 가운데 하나인 그녀 스스로에 대한 모종의 죄책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화합을 다지기 위한 시도를 하고는 있지만 여전히 회사와 연합은 적대 세력이라는 점하며, 그림자 능력이 가져다줄 수 있는 잠재적 이익에 눈이 멀어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려 드는 탐욕스러운 권력자들, 무엇보다 아직까지도 노인의 망령처럼 쫓아다니는 안타리우스까지, 트리비아의 연인이기에 다이무스가 감수해야 할 것들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트리비아는 그렇잖아도 홀든가의 후계자로서, 헬리오스의 앞날을 이끌어갈 주역으로서, 이 시대 최고의 검사로서 해야 할 일이 많은 다이무스를 걱정하는 것이다.


  자신을 걱정해주는 트리비아의 마음은 고맙지만 그녀는 하나만 알고 둘은 알지 못했다. 트리비아를 지키고자 한 것은 다이무스 스스로 선택한 일이며, 그녀를 둘러싼 모든 악조건을 보지도 못할 만큼 어리석고 맹목적인 사랑도 아니었다. 그 모든 것들로부터 그녀를 비호하며 이 사랑을 관철해나갈 수 있으리라는 자부심에 가까웠다.


  무엇보다도 약 30여 년을 살아오면서 트리비아를 만나 처음으로 느낀 운명과 설렘을 그냥 놓쳐버리기에는 다이무스는 여태까지 한 번도 실수를 저지른 적이 없었다. 그녀는 자신이 곁에 있으면 다이무스를 불행하게 만들지도 모른다고 오랜 습관처럼 생각하겠지만, 다이무스로서는 이제는 트리비아가 곁에 없는 편이 더 불행이었다. 자기 감정에 스스로 빠져들어 헤어 나오지 못할 정도로 그녀를 사랑한다.


  “나는 가슴 앞에 칼을 쥐고 있을 때, 어떤 것도 헛되이 내 이름을 부르지 못하게 할 것이다.”


  다이무스는 트리비아의 손에서 칼자루를 다시 건네받고는 마주보고 서며 말했다. 그러고는 한동안 말없이 눈길만 얽다가 한쪽 무릎을 꿇고 그녀의 발치에 앉았다.  


  “내 심장은 너의 것이다.”


  칼날을 바깥쪽으로 향한 채 칼자루를 쥔 오른손을 왼쪽 가슴 위에 대고 눈을 휘둥그레 뜬 트리비아를 더없이 진지한 눈길로 올려다보았다. 


  “그러니 나의 검은 너를 위한다. 너를 지켜낼 때 비로소 나의 이름도 헛되지 않을 것이다.”


  트리비아의 눈빛이 거세게 흔들렸다. 그 아름다운 눈동자 안에 굳건한 맹세를 담은 황금빛 칼날이 어른거렸다. 가볍게 주먹을 쥐고서 가슴팍에 올려두고 있던 그녀의 손이 떨리며 더 주먹을 꽉 쥐었다. 


  트리비아는 칼집을 주워들었다. 두 손으로 정중하게 잡고서 천천히 칼집에 칼을 꽂아 넣었다. 칼집을 덮어씌운 검신을 손끝으로 어루만지며 트리비아도 다이무스와 눈높이를 맞추어 무릎을 꿇고 앉았다. 붉은 칼집 위에 도검 장인의 검은 문양이 새겨진 자리 위로 그녀는 눈을 감으며 입을 맞추었다. 뺨 위로 황금색 눈물이 방울져 흘러내렸다.


  “……아름답군.”


  트리비아가 찬란하게 빛나는 칼날을 바라보며 건넨 찬사를 다른 식으로 되돌리며 검째로 그녀를 품에 끌어당겨 안았다.


  지금 가슴에 품은 것은 소중한 연인과 그녀를 지키는 검, 다이무스는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고 생각하며 눈을 감고 절정에 이르는 황혼을 느꼈다.  



― 맹세(Propo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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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꿈과 현실의 경계를 잘 벼린 칼로 베어낸 듯 잠에서 깼다. 정말로 잠들어 있었던 게 맞기는 한지 잠에 취해 부옇게 흐려야 할 눈은 이상하리만치 또렷이 익숙한 침실 천장을 담아냈다. 온몸이 가위에 눌린 것처럼 뻣뻣하게 굳어 있다. 식은땀이 배어들었는지 이불을 목끝까지 끌어올린 채인데도 으스스 추위가 엄습했다. 한기란 본디 이 싸늘한 몸에는 낯선 것이어야 할 텐데 온몸이 발작이라도 일으킨듯 잠시 부르르 떨렸다. 그 진동 덕분에 산송장마냥 경직되어 있던 몸이 천천히 풀리며 편안히 침대로 가라앉았다.


  나른하기 짝이 없는 몸을 억지로 일으켜 침대 머리맡에 기대어 앉았다. 머리에 피가 돌지 않는 듯 어지러워 벽에 뒤통수를 붙이고 멍하니 방 안을 쳐다보았다. 어둠을 꿰뚫는 이 눈은 너무나도 쉽게 익숙한 방 안 풍경을 담아냈다. 다른 사람들처럼 어둠 속에서는 그 무엇도 분간하지 못하면 좋으련만. 곳곳에 이제는 혼자만의 기억이 아니라 두 사람 몫의 추억이 깃들어 있었다. 누군가의 부재로 인해 사무치는 이 외로움과 그리움은 낯설기만 해서 그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짓눌릴 것만 같았다. 고개를 푹 숙이며 떨리는 몸을 끌어안았다. 고독과는 달리 혼자서는 해소할 수 없는 이 공허가 참을 수 없을 만큼 두렵다.


  거북이가 등딱지 안으로 머리를 숨기듯이 웅크린 고개를 들었다. 앉은뱅이처럼 매트리스 위에 힘이 잘 들어가지 않는 팔을 지지해 침대 가장자리로 어기적어기적 다가가 앉았다. 조심스레 손을 뻗어 벽면에 세워둔 칼집을 집어 들었다. 허벅지에 두 손바닥을 위로 향한 채 칼집을 놓고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먼젓번 허락을 구한 뒤 한 번 만져본 태도는 건네받자마자 몸이 휘청일 정도로 무거웠다. 곧장 그가 뒤에 바싹 붙어 서서 손을 포개 함께 들어주었음에도 육중함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그 무게는 그가 현재 짊어지고 있고 앞으로도 떠안고 가야 할 모든 소임을 나타내는 것만 같았다.


  칼은 그토록 무거웠는데도 칼집은 별로 무겁지 않았다. 그런 날카로운 무거움을 이런 매끈한 가벼움이 늘 감싸고 있었다. 그는 검신을 흉흉히 드러낸 채로 마지막 자취가 발견된 장소에 칼집만 남기고는 사라져버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위험한 임무였다. 그가 디미스트로 장기임무를 떠나게 되었다고 어렵사리 말을 꺼내자마자 불안한 예감이 엄습했다. 그 마의 숲에서 유일하게 자유로울 수 있는 엘윈의 드니스 및 사이퍼 몇이 동행한다고는 하나, 헬리오스 내의 젊은 중역인 그를 굳이 그 위험한 곳으로 보내려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명왕의 은퇴 후 브뤼노 올랑이 회사의 수장이 되면서부터 조성된 사내 파벌에 관한 소문을 들었다. 크고 작은 세력들은 하나같이 다이무스를, 더 나아가 홀든가의 권세를 포섭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 누구와도 영합하지 않고 오로지 제 일만 묵묵히 해낼 뿐인 그를 되레 아니꼽게 보는 이들이라고 없으랴. 임무를 가장해 일부러 그를 제거하려는 속셈일는지도 모른다. 그런 비관적인 상상만 들어 가지 말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으나, 끝내 아무 말도 못하고 제 팔을 끌어안으며 등을 홱 돌려버렸다.


  슬며시 다가와 뒤에서 꼭 안아주는 그의 체온이 따뜻해서 울고 싶은 기분마저 들었다. 무엇 하나 그는 잘못한 게 없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야속했다. ‘걱정 마라. 나는 반드시 돌아올 것이다.’라고 속삭이는 목소리가 다정해서 이기적인 서운함을 표현할 수도 없었다. 천천히 뒤로 돌아서 마주본 얼굴은 안심을 주려는 듯 어설프게 웃고 있었다. 그의 눈동자 안에 그 자신의 앞날보다도 트리비아를 남겨두고 가는 것에 대한 걱정이 엿보였다. ‘……바보 같은 사람.’이라는 말에 쓰게 웃으며 입 맞춰오던 그 감촉이 여즉 생생했다.


  그가 디미스트로 떠나는 날까지 최대한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다. 지금으로서는 차라리 그러지 말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면 그는 진작에 돌아왔을지도 모르는데. 쓸데없는 심려가 오히려 임무에 대한 부담을 늘렸을 거라는 상상에 죄책감마저 들었다.


  칼집을 세워 꼭 껴안았다. 부피도 질량도 온도도 결코 그를 대신할 수는 없지만 지금 트리비아를 버티게 하는 것은 그가 이것을 남긴 의미였다.


  디미스트로 간 그들에게서 연락이 두절되자 파견된 회사 조사단은 다이무스의 칼집을 발견하고는 그것을 그의 동생인 이글에게 건네주기 위해 지하연합에 찾아왔다. 앤지의 집무실에서 자초지종에 관해 설명 받던 그 자리에서 이글은 말없이 칼집을 바라보다가 트리비아에게 내밀었다. 이것은 형이 너한테 남긴 것이니 네가 가지고 있어야 맞다고 했다. 그것을 어떻게 아느냐고 무언의 시선으로 묻자 이글은 이런 쑥스러운 말을 하게 만드는 다이무스에 대한 불만을 중얼거리며 설명해주었다.


  검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칼집이 함께해야 한다. 칼집으로 되돌리지 않으면 검은 그저 정당화될 수 없는 폭력에 지나지 않는다. 필요할 때만 뽑을 것이며 평상시에는 칼집 안에 갈무리해두어 그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게 해야 한다. 그 정도로 칼집은 검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물건이다. 그것을 누군가에게 건넨다는 것은 되찾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그 사람의 곁으로 돌아오겠다는 맹세 그 자체다. 검사들 사이에서 보통 그것은 연인에 대한 영원한 사랑의 맹세로 통용된다. 검이 단순히 사람을 해치는 무기가 아니라 그대를 지키기 위해 존재하므로 위험하지 않다. 그러므로 그대는 내게 예리한 칼날을 감싸주는 칼집과 같은 존재라는 의미였다.


  희망이 절망보다 더 나쁜 것임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데도 이 칼집이 곁에 있는 한 기대를 버릴 수가 없었다. 확신할 수는 없지만 그가 약속대로 돌아올 것이라 믿고 싶었다. 그럼에도 언제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운 마음은 스스로 악몽을 불러냈다. 잠드는 것이 두려워질 정도로 반복되는 꿈은 언제나 내용이 같았다.


  그는 트리비아를 지키기 위해 검을 뽑아들고 앞을 막아설 때를 빼놓고는 한 번도 등을 보인 적이 없었다. 첫 만남은 그가 등 뒤를 항상 지키며 걸었고 시간이 흘러 나란히 걷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그럼에도 꿈 속의 그는 아무리 이름을 불러도 뒤돌아보지 않고 그저 앞으로 걸어가기만 했다. 외면하는 듯한 그 등이 싫어서 도저히 붙잡으려고 해도 따라잡을 수 없었다. 그리 먼 거리도 아닌데 탄탈로스의 형벌인 양 잡을 듯하면 어느새 멀어지는 일의 반복이었다. 꿈이라도 좋으니 다이무스의 얼굴이 보고 싶었다.


  곧 고개를 조용히 가로저으며 생각을 고쳐먹었다. 칼집을 품 안으로 더 끌어들이며 몸을 뉘었다. 꿈은 어차피 한낱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깨고 나서 현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 더욱 허무해질 뿐인 것에 집착하는 짓은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았다. 옛날처럼 모든 것을 버리고 나만의 공간으로 도피하고 싶다는 쪽으로 결론이 날 뿐이다. 여전히 싫은 것이 더 많은 현실임에도 그가 곁에 있기에 계속 머물러도 괜찮을지도 모른다고 여길 수 있었다. 그가 칼집을 남기면서 한 번 더 각인시킨 맹세를 믿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다이, 무스…….”


  조용히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을 읊조리며 그가 있어야 하는 옆자리를 손으로 더듬었다. 너무나도 연약하고 의존적인 스스로의 모습이 낯설어 그것을 외면하듯 질끈 눈을 감아버렸다. 눈꺼풀을 닫는 것은 이 눈동자에 유일하게 허락된 어둠이었다. 부디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이 악몽 같은 기다림이 끝나있기를 간절히 빌며, 트리비아는 지친 듯이 잠의 나락으로 서서히 떨어져갔다. 



― 칼집(Waiting)



  두꺼운 커튼이 쳐진 침실은 깜깜했다. 몸을 일으키자 어깨까지 덮고 있던 이불이 골반까지 스르르 흘러내렸다. 아무것도 입지 않은 몸에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춥다. 어둠을 어둡다고 느끼지 않는 눈은 방 안을 멍하니 둘러보다가 침대 옆자리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손으로 더듬어보았다. 차갑다.


  침대 아래로 발을 내딛었다. 창가로 다가가 커튼을 살짝 젖혔다. 싹트기 시작한 여명이 밤을 가르고 조금씩 솟아오르고 있었다. 새까만 밤빛보다도 새벽 어스름이 더욱 시리다. 동이 트기 시작하는 새벽녘이 가장 춥다. 한밤중의 추위가 현재진행형이라면 새벽의 추위는 완료형이다. 밤새 얼어붙어 있다가 기껏 해가 떠올라 몸을 녹일 수 있다고 생각할 때쯤에는 이미 동사하고 없는 밤의 끝자락이면서 아침의 시작인 새벽. 밤은 고독하지 않지만 밤이 겸허히 물러나는 새벽녘에는 기어이 마비되지 않는 쓸쓸함이 잊고 있던 갑작스런 오한처럼 밀려왔다. 모든 타인을 싫어하는 채로 계속 있을 수 있었더라면 ‘곁’이라는 빈 공간을 느끼는 일은 영영 없었을 것이다. 어둡고 안온한 고독 속에 잠겨 차가운 몸은 이런 추위를 몰랐을 텐데.


  “……다이무스.”


  스스로 몸을 끌어안으며 따스한 이름을 중얼거렸다. 문득 새벽에 잠을 깨 비몽사몽한 채로 그의 팔 안에 있다는 것을 실감하고 나서 슬쩍 미소 지으며 다시 잠들고는 했던 당연함이 지금 이 순간 그의 부재를 더욱 참을 수 없는 것으로 만든다. 간밤에 그가 남긴 자국들도 더 이상 화끈거리지 않았다. 촉촉한 열기에 몸이 달은 그 순간이 충동처럼 그리웠다.


  느릿느릿 방문을 열고 나왔다. 방 밖은 침실보다도 더 싸늘했다. 방보다 훨씬 더 큰 거실 넓이는 거기 있었으면 하는 사람이 없어 상실감을 더욱 두드러지게 할 뿐이었다. 


  “다이무스…….”


  자기가 듣기에도 섬약한 목소리였다. 가까이 있더라도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을 정도로 작고 가늘었다. 누군가를 찾는 헤매는 태도치고는 지극히 수동적이다. 하물며 이곳뿐만이 아니라 집 구석구석을 뒤질 생각도 않고 발은 금세 한 지점에 머물고는 말았다. 카펫이 깔린 방과는 달리 발밑부터 얼어붙기 시작하는 것처럼 발이 시렸다.


  “다이무스, 어디 있어……?”

  “트리비아?”


  등 뒤에서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천천히 환청이 아니기를 기도하며 돌아섰다. 샤워 가운을 입고 수건으로 머리를 털고 있던 그가 약간 휘둥그레진 눈으로 머리에서 천천히 손을 떨어뜨렸다. 다행스러움이 손을 대신해서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가 말도 없이 훌쩍 어딘가로 떠날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다. 오히려 그는 트리비아가 사라져버릴까 불안해하면 불안해했지 반대로 불안을 안긴 적은 없었다. 그를 사랑하게 된 이유 같은 건 이제 와서는 생각나지 않지만, 그의 곁에 있으면 그저 한없이 차분해지고 편안했다. 거기에 안주하고 있다는 자각이 지금까지는 없었기에, 그가 잠깐 말없이 자리를 비운 정도로 다시 잠들지도 못하고 그를 찾아야겠다는 생각부터 먼저 들었을까.


  그럼에도 절박한 심정에 걸맞게 당장 자리를 박차고 달려 나가지 않았다. 자신의 이기적인 안일함과 마주하고 싶지 않아서, 이런 절실함을 들키고 싶지 않아서 부러 의욕을 감추었다. 그저 그가 나를 껴안고 그의 온기에 파묻히기만을 간절히 바랐다. 그의 목소리가 들려온 순간 황급히 돌아보아야 했고 달려가 안겨야 했지만 그러지도 않았다.


  그의 진중한 눈길은 이런 복잡한 심경을 아주 잠깐 흐려진 표정만 보고도 알아차린 것 같았다. 한동안 얼굴을 가만히 쳐다보기만 하던 다이무스는 무언가 말하려고 입을 열었다가 그제야 트리비아가 추워 보인다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가운 허리끈에 손을 대며 성큼 다가왔다.


  가까스로 손을 움직여 띠를 풀어내려는 그의 손을 붙잡았다. 의문스런 눈길이 느껴졌지만 마주치지는 않으며 일부러 뜸 들여 매듭을 풀어냈다. 자연스레 스르륵 벌어지는 가운 섶 사이로 상흔이 군데군데 자리 잡은 탄탄하고 유려한 상체가 드러났다. 그 윤곽을 그리듯이 손끝으로 어루만지다가 팔 아래로 손을 스르르 미끄러져 들어가 등허리를 꼬옥 껴안았다. 샤워 뒤의 촉촉한 열기가 메마른 냉기만 감도는 몸 위를 단숨에 감쌌다. 예상보다 차가웠는지 본능적으로 움찔한 그가 곧 넓은 샤워가운 섶 양쪽을 잡고서 품 한가득 감싸 안아왔다. 


  “……잠깐 단련을 하고 온 것뿐이다.”


  그가 관자놀이 근처에 깊게 입을 맞추며 속삭였다. 사르르 추위가 녹아내리는 느낌이 더없이 좋아서 좀 더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응하듯 강해지는 구속이 더없이 감미롭다. 사위엔 새벽의 고요만 가득하여 지금 귀에 닿는 것은 작게 뛰는 서로의 심장소리뿐. 나와 세상이 동시에 침묵할 때만 들을 수 있는 이 소리를 좋아한다. 맥박과 아주 옅게 샤워 코롱 향기가 섞인 체취와 새벽 어스름을 등지고 선 그의 완벽한 역광 안에서는 오로지 안식뿐이다. 한순간의 불안이 부끄러워질 법도 했지만 이 충족감에 그예 잊어버렸다.


  그저 자신이 그를 깊이 사랑하고 있다는 확신만이 점점 사물의 전모를 폭로하기 시작하는 여명처럼 밝혀지고 있었다.



― 돌이킬 수 없는(Naked)



  이 손에 연습용 목도가 아니라 지금의 태도를 쥔 순간부터 새벽 단련을 한 번도 거른 적이 없었다. 새벽 다섯 시면 눈이 저절로 뜨이는 게 체화되어 이글의 인간시계라는 말에 반박 못할 정도로 다이무스는 엄격히 규칙적인 생활을 고수해왔다. 지금도 그런 일상성에 변함은 없지만 약간 스케줄이 달라졌을 뿐이었다.


  트리비아와 약혼을 하고 정식부부가 되는 식을 치르기까지 주어진 짧은 기간 동안은 가문을 나와 살기로 했다. 그녀와 나 둘만의 공간이라는 것은 상상 이상의 만족감을 주었다. 단련을 끝내고 샤워를 한 뒤에는 아침식사 시간까지 서재에서 책을 읽거나 하는 식이었지만 이제는 다시 침대로 돌아왔다. 다시 눈을 붙이기 위한 건 아니었다. 다만 새근새근 잠들어 있는 예비 신부의 잠자는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기 위해서였다. 그녀의 평온한 잠을 방해하지 않도록 커튼을 다 젖히지는 않고 두 겹 중 한 겹만 조심스레 걷어냈다. 상냥한 어스름에 휩싸인 방 안에서 조심스럽게 그녀를 감싸안는다. 팔 안의 행복을 머금는 이 시간에는 모든 걱정도 시름도 의미를 잃는다. 서늘하게 감기는 그녀의 체온과 좋은 향기와 보드라운 감촉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충족감을 선사했다. 평화는 이곳에 머무른다.


  주말에는 이 사랑스러운 시간을 그녀가 눈 뜰 때까지 만끽하지만 평일에는 그럴 수 없었다. 여유로운 출근 시간을 위해서는 몸을 일으켜야 했다. 다시 조용히 일어나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고 아쉬운 마음의 한편 오늘을 충실하게 보낼 힘을 얻는다. 아침 식사를 함께 하지 못하는 미안함에 늘 전날 밤에 바로 차려 먹을 수 있도록 준비해놓는 그녀의 호의에 이젠 더 이상 거절하지도 못하고 슬쩍 미소 지으며 아침을 먹는다. 본가로 들어가면 어차피 바스티안 휘하의 하인들이 할 일이다. 그녀가 만든 요리를 먹는 즐거움은 지금이 아니면 느낄 수 없는 귀중한 것이라 여기기로 했다.


  서류 가방 안을 검토하고 나면 드레스룸으로 가서 은행원일 때의 임무복이나 다름없는 정장을 갖추어 입었다. 실내복을 벗어 정장 바지를 입고 셔츠를 걸친 뒤 평소처럼 무심하게 거울을 보며 단추를 채우려다 손을 멈칫했다. 먼젓번 퇴근하고 난 뒤에 사랑스럽게도 유혹해온 트리비아가 떠올랐던 탓이다.


  범접할 수 없는 고고함의 한편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도무지 거역 못할 관능을 불러일으키는 그녀임에도 그처럼 먼저 요구해오는 일은 사실 별로 없었다. 그러니 더욱더 거부할 수 있을 리도 없고 사랑을 나눈 뒤 함께 욕조에 몸을 담갔을 때 촌스럽게 이유를 물었다. 그녀는 눈을 몇 초간 깜빡이더니 그저 수트 차림이 멋져서라고 대답했다. 언젠가 꼭 한 번은 아침에 직접 넥타이를 매주고 싶다고도 덧붙였다. 그 말을 들었을 때는 내심 설레어 기대하기도 했지만 결국 단잠에 든 그녀를 깨우고 싶지 않아서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왜 지금에야 문득 떠오르는 것일까.


  셔츠 맨 밑 섶을 쥐고 단추를 잠그려던 손길을 한동안 멈춘 채 망설이다가 결국엔 재킷과 넥타이 등을 들고 침실로 향했다. 스스로가 약간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사실 사내로서 그런 로망이 없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그녀의 앞에서는 솔직함밖에 없다. 사랑도 욕망도 질투도 도무지 숨기지를 못한다. 그녀는 그런 게 오히려 기쁘다고 말해주지만 표현을 잘 하지 못하는 만큼 서툴기만 하다. 감정이 휘둘리지 않는 데 자신이 있을 참이었는데도 여제는 그걸 허락하지 않았다. 꽤 익숙해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트리비아의 앞에서만큼은 만감이 교차하는 스스로가 낯설다. 그게 전혀 기분 나쁘지 않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일 것이다.


  트리비아는 여전히 새하얀 시트에 푹 파묻혀 새근새근 잠들어 있었다. 방문을 다 닫지는 않고 반쯤 열어둔 채로 침대 가장자리에 걸터앉았다. 매트리스로 조금은 전해질 진동에도 미동도 않는다. 풍성한 속눈썹이 드리워진 아름다운 눈매를 여유가 허락하는 한 한동안 더 응시하다가 손을 뻗어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머리카락 틈새로 손가락을 얽었다 놓으니 은은하게 코끝으로 스며드는 샴푸향이 싱그럽다. 비단실처럼 스르르 손아귀에서 흘러내리는 머리칼을 타고 올라가 엄지로 귓바퀴의 윤곽을 따라 그리고는 귓불을 주물렀다.


  “트리비아.”


  깊이 잠이 든 듯 꼼짝도 않던 트리비아가 조금씩 꿈틀대기 시작했다. 느릿느릿 잠을 깨는 과정에서 그녀가 하는 작은 몸짓 하나하나를 살피는 것이 즐겁다. 다시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쓸며 눈가에 입을 맞추자 천천히 눈을 뜨고 깜빡였다. 왜 일어났는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잠에 잔뜩 취한 눈동자, 봄날 햇살에 눈을 비비며 하품하는 영락없는 고양이 한 마리다. 마냥 귀엽다고만 평하기에는 그녀의 복장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속옷만 입은 채로 나른한 몸을 비틀며 기지개를 켜는 그 자태는 자각없이 유혹하는 것 같았다. 검은 속옷과 투명하리만큼 흰 피부와의 대조, 그런 그녀의 몸에 감긴 이불마저 더없이 요염하다.


  나른한 기미가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점점 또렷해지는 눈동자가 입다 만 다이무스의 복장을 보고 단번에 상황을 파악한 듯했다. 눈꼬리가 보기 좋게 휘었다. 귀엽다는 듯한 그 눈길에 셔츠 단추도 잠그지 않은 채 있는 자신의 모습이 갑자기 부끄러워졌다. 그 작은 수치에서 구해주듯이 트리비아가 두 팔을 느긋하게 위로 뻗어 올렸다. 안아 올려달라고 응석부리는 것 같은 행동거지에 불시에 심장이 소란스러워졌다. 웃는다기보다 입가가 바보같이 느슨해져서는 일으켜주기 위해 상체를 숙였다.


  목을 살짝 끌어안기만 할 것 같던 그녀가 목에 팔을 단단히 휘어 감고서는 그대로 아래로 당겼다. 그 힘은 결코 세지 않았지만 무게중심이 앞으로 쏠려있던 터라 그녀를 깔아뭉개지 않도록 재빨리 두 팔을 침대 위에 지지했다. 살짝 당황스러움이 감도는 자신의 얼굴이 그녀의 눈동자 안에 비쳤다. 목을 끌어안고 있던 그녀의 팔이 스르르 미끄러져 내려 목깃 부분부터 단추를 채우기 시작했다.


  자세 때문일까. 셔츠 섶이 다물리고 있음에도 벌어지는 것 이상의 자극처럼 느껴지는 것은. 눈을 계속 맞춘 채로 천천히 단추를 따라 아래로 내려가는 손길이 아침에 안 맞게 농염하게 느껴졌다. 이런 감각의 혼란을 자초하고 싶었던 건 아닌데.


  중간쯤 오자 트리비아가 가슴팍을 살짝 밀어 올렸다. 아쉬우면서도 다행스러운 상반되는 심정에 휩싸이며 그녀의 등 뒤로 팔을 끼워 안은 채 함께 몸을 일으켰다. 침대 밑으로 발을 딛고 서자 그녀는 침대 위에서 무릎을 세우고 앉아 나머지 단추를 마저 채웠다.


  그녀가 셔츠깃을 세우고 넥타이를 능숙하게 매주는 사이 바지 안으로 셔츠를 단정히 넣고 벨트를 채웠다. 과연 단추를 채울 때처럼 손끝 감각만으로는 할 수 없는 작업이라 눈을 맞추지는 못하지만 넥타이를 매는 진지하고 상냥한 눈길이 기분 좋다. 매일 아침 무심하게 지나가는 순간이 다만 그녀의 손을 거친다는 이유만으로 특별해진다.


  등을 보이고 조끼와 재킷을 걸치는 데까지 도움을 받았으나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은 게 아쉬울 정도로 출근 준비는 일찍 끝이 났다. 옷매무새가 마음에 드는지 사뭇 흡족한 얼굴로 감상하던 트리비아는 세운 무릎을 도로 굽히며 침대 위에 앉았다.


  여전히 졸린지 한 손으로 입을 가린 채 하품하고서 눈을 비비는 행동 하나하나가 귀여워서 웃음을 머금어야 할 텐데도 도무지 유혹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병이 분명했다. 이 병마의 원인은 당연히 눈앞의 그녀다. 그녀에게 맨 살에 와 닿는 수트의 감촉이 어떤지 몸소 알려주고 물어보고 싶은 충동이 들고 마는 것이다.


  트리비아의 턱으로 손을 가져가 살짝 추켜올렸다. 고개를 갸웃거리는 그녀를 보고 또 다시 심장이 크게 요동치는 것을 느끼며 머리를 끌어안고 정수리 위로 입을 맞췄다.


  “출근하고 싶지 않군.”


  농담이지만 진심이기도 한 말이 퍽 놀라웠는지 트리비아가 황급히 고개를 들어올렸다. 살짝 벌려진 입이 놀라움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언제나 그녀에게 워커홀릭이라는 말을 듣기 일쑤니 당연할 것이다. 그저 그녀와 함께 유유자적 보낼 수 있는 시간을 더 많이 확보하기 위해 힘쓰는 것뿐이라는 사실은 쑥스러워서 전할 수 있을 리 없었다.


  “당신 입에서 그런 소리가 나오다니 천지가 개벽하겠어.”


  간신히 충격을 수습한 트리비아는 마치 진귀한 것을 보는 듯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네 탓이다.”


  허리를 숙여 부드럽게 그녀의 입술을 머금고는 부드럽게 쪼아먹었다. 유혹인 듯 아닌 듯한 장난으로 마음을 흔든 건 그녀인데도 자각조차 없는지.


  “……안 돼. 다녀와. 얌전히 기다리고 있을 테니.”


  턱을 붙잡고 있는 손을 빼내며 슬그머니 고개를 뒤로 내뺀 그녀가 이마를 콩 맞대며 말했다.


  “아아.”


  긍정하는 것 그 이상을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게 애석하면서도 퇴근 시간을 기다리며 오늘 하루를 보낼 수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행복 말고 지금 마음에 다른 것이 끼어들 틈이 없었다.  



― 수트로맨스 2(Suit Romance 2)



  “새해 소원 있어?”

  “아니, 딱히 없다.”

  “흐음, 있으면 들어줄까 싶었는데.”

  “그건……거부할 수 없는 제안이군.”

  “후후- 없던 소원도 생겨날 만큼?”

  “오직 너만이 해줄 수 있는 게 있다.”

  “그리 말하니 어깨가 무거워지는 걸.”

  “앞으로도 쭉 내 곁에서 함께 새해를 맞이해주면 좋겠다.”

  “욕심도 없지.”

  “그 반대 아닌가. 네 평생을 탐하려는 건데.”

  “…….”

  “바라건대, 내 품 안에 있어라. 네가 사라지면 나는 어찌 될지 모른다.”

  “소원을 빌라고 했더니 되레 협박하기야?”

  “네가 소원을 들어주면 없을 일이다.”

  “그 전에 내 소원도 들어줘야지.”

  “무언가.”

  “일생 내 곁에서 나를 지킬 것.”

  “소원을 빌 필요가 없었군.”



― 소원(Happy New Y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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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답고 성스럽다. 여인이 태중에 아이를 품으면 저리 되는 건가.


  가장 따뜻하고 햇기 강한 오후의 초입, 트리비아는 거실 안락의자에 앉아 조용히 잠들어 있었다. 눈부심을 싫어하는 아내답게 얼굴께는 커튼 그림자에 살짝 숨기고, 눈에 띄게 부풀어 오른 배는 볕을 담뿍 쬐도록 두었다. 동그마니 솟은 배 위에 얹어진 희고 가느다란 손이 미칠 듯이 사랑스럽다. 어쩌면 자신이 출근하고 없는 주중에도 이즈음 오로지 아이를 위해서 자연의 따스함을 내어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불후의 성화(聖畵) 한 폭이라도 감상하는 양 넋을 잃고 있다가 번뜩 정신을 차렸다. 발소리를 죽여 서둘러 방에서 무릎담요를 들고 나왔다. 인기척에 민감한 그녀가 행여 깨지 않도록 살그머니 덮어주며 발치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올려다보았다.


  트리비아가 임신 소식을 전했을 때 설명할 수 없는 기쁨과 내가 부친이 된다는 얼떨떨한 기분을 한꺼번에 맛보았다. 하지만 어딘가 석연치 않은 그녀의 얼굴에 짐짓 감정을 추슬러야 했다. 무언의 기다림 끝에 아내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은 ‘두렵다’였다. 다시금 끈덕진 침묵으로 팽팽하게 줄다리기한 끝에 ‘내가 이 아이를 진심으로 사랑하지 못하면 어떡하지?’라며 겨우 말을 꺼냈다.


  왜일까. 트리비아가 솔직한 심경을 털어놓아 주었을 때 당황하기보다 미소를 머금고 만 것은. 그녀의 염려가 오히려 고마웠다.


  모성애는 타고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맹목적 사랑으로 옭아매어진 아이는 고통스러울 수 있음을 복잡한 가정사를 통해 직접 겪으며 자라왔다. 타인을 거부하기 일쑤인 그녀에게 아무리 제 자식이라 해도 막연히 ‘생명’이라는 인식밖에 없었을 터. 혼란스러워 보이는 아내를 조용히 감싸안았다. 트리비아의 걱정은 결국 우리 아이만큼은 꼭 사랑하고 싶다는 의지의 반증이나 다름없어 보였다. 나 또한 아직은 크게 실감나지 않음을 고백하며 함께 노력하자고 속삭였다. 그녀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을 뿐.


  내심 우려했던 것과 달리 트리비아는 본인이 할 수 있는 한 최선의 애정을 보였다. 오히려 매사 아이를 먼저 배려하는 그녀의 행동에 묘한 소외감을 느꼈다고 말하면 그녀는 웃을까. 당분간은 아내와 한몸이 되어 있을 아이에게 살짝 질투가 날 정도였다.


  평온한 미소를 머금은 채 잠든 트리비아의 얼굴을 보고 덩달아 웃으며 시선을 내렸다. 아이를 뱃속에 지닌 트리비아도, 봉긋 솟은 이 배 덕분에 그나마 안다지만 실체를 모르는 아이도, 곧 깨질 듯이 섬세하게만 보여 선뜻 어루만질 용기가 나지 않았다. 지금이라면 왠지 살그머니, 아주 잠깐만이라면 닿을 수 있을 것 같다. 트리비아의 손이 얹어진 곳보다 약간 아래에 있는 언덕배기에 천천히 손을 가져다 댔다. 두쿵, 제법 거센 고동이 손바닥으로 느껴졌다. 화들짝 놀라서 손을 뗐다.


  “아빠인 걸 아나봐. 평소보다 더 힘차게 발로 차는 걸.”


  강렬한 감각이 저릿저릿하는 제 손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데 아내의 목소리가 들렸다. 졸음기 하나 없는 걸 보니 아무래도 처음부터 자지 않은 듯했다. 트리비아는 작게 웃음을 흘리며 부드럽게 배를 쓸어내리고 있었다.


  “모친을 차다니, 예절교육이 필요하겠군.”

  “후후, 아직 세상에 나오지도 않은 애한테 엄격하기도 하셔라. 기쁘다고 하는 거야. 아빠가 처음으로 말을 걸어줬으니까.”

  “……‘아빠’라.”


  아직은 낯선, 그렇지만 머지않아 다이무스 홀든을 지칭하게 될 또 다른 호칭을 곱씹어보았다.


  다시금 트리비아의 배를 쓰다듬으며 한쪽 팔로 허리를 껴안고 살포시 귀를 가져다 댔다. 생명의 약동이 느껴진다. 그 소리를 들으며 아내가 뒷머리를 쓸어주는 부드러운 손길을 느낀다. 눈물겨울 만큼 행복하다. 지금 이 순간을 예쁜 유리병에 넣어 두고두고 바라보고 싶을 정도로.


  “……내가 사랑하는 당신의 아이니까 소중히 하겠다는 마음이 생겨났어.”


  눈을 감고 한쪽 귀로는 아이의 태동을 나머지 귀로는 가슴 설레는 그녀의 고백을 듣는다.


  “고마워.”


  천천히 고개를 들자 트리비아가 내 뺨을 양손으로 잡고서 진심 어린 고마움을 전했다. 다이무스는 가슴 속에 무어라 설명할 수 없는 따뜻함이 샘솟아 코끝이 시큰해졌다. 다만 행복하다.


  “너와 이 아이는 내가, 나의 검에 맹세컨대 영원히 지킬 것이다.”


  그녀의 손을 잡아내려 배 위에 얹고는 고개 숙여 손등 위로 깊이 입을 맞추었다.


  “고맙다. 사랑한다.”


  말로는 모자란 듯 그 말을 직접 밀어넣듯 이번에는 트리비아의 입술을 머금었다.


  임신 사실을 안 뒤부터 본의 아닌 금욕 생활을 해야 했던 다이무스는 오랜만에 느끼는 트리비아의 부드러운 감촉과 향기에 정신없이 빠져들었다. 입술을 탐하며 그녀의 가슴을 느긋하게 주무르다가 정신을 차리고 허겁지겁 몸을 떼어놓으려 했으나 그녀가 허락하지 않는다는 듯 목에 팔을 휘감아왔다. 그런 반응이 내심 기쁘면서도 가까스로 자기를 억제하려 애쓰며 입을 열었다.


  “애가 본다.”

  “조기성교육을 시킨다는 점에서 나쁘지 않다고 보는데?”

  “……트리비아.”

  “후후. 농담이야. 의사가 말했어. 안정기에 접어든 뒤에는 부부의 관계는 오히려 태아 건강에 좋다던데?”

  “…….”

  “그러니……안아줘, 다이무스.”

  “그런 건.”


  입술을 간질이듯 어루만졌다.


  “진작 말해라.”


  다이무스는 트리비아에게 촉하고 입을 맞추고는 그대로 입술을 다시 그녀의 배 위로 가져갔다.


  “미안하지만 네 엄마는 내 것이다. 지금도, 네가 태어난 이후로도.”



― 태동(Womb)



*

01 아름다움(Praise): ‘너보다 아름다운 피조물은 보지 못했다’는 이 다이무스의 감상은 사실 제 마음입니다. 트리비아를 볼 때 제 안의 아니무스(animus; 여성의 남성성)가 사정없이 꿈틀거리죠. 그게 다이무스(Deimus)라는 이름의 사내로 구현된 것은 필연...이라고 저만의 철학을 확립하고 있습니다만 별로 쓸모는 없네요. 하하. 트리비아야 아름답다는 찬사는 수도 없이 들어봤을 테지만 진정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듣는 꾸밈없고 솔직한 찬사에는 새삼 설레고 수줍어하겠죠? 다이무스야 원래 미남은 아니고 분위기로 먹고 들어가는 사내라서 외양을 칭찬받으면 반응하기가 무척 곤란해할 것 같아요. 알고 보면 제법 귀여운 면모도 있는 두 사람을 쓰고 싶었어요. 

02 위안(Calm): [Inspired by. Shaffen] 말이 없는 트리비아, 말이 없는 다이무스. 그 침묵으로 서로를 이해하는 두 사람.

03 춘정(Spring Love): 제곧내. 그저 제 마음에도 춘정이 들어서 다정도 병인 양하는 올해 봄밤에 마음 가는 대로 썼습니다. 스스로도 썩 마음에 드는 글이에요.

04 충동(Sens): Sensual Sensitive Sensuous Sensation 그밖의 전부.

05 맹세(Propose): 사이퍼즈 캐릭터 칼럼에는 제각기 대표 카피 문구가 소개되어 있지요. 다이무스의 대표 문구에서 끌어와 써본 글입니다. 아, 그리고 다이무스는 시 쓰는 게 취미인 남자니까 여차할 때는 다른 사람들은 절대로 못할 대사도 짧고 굵게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06 칼집(Wating): 트위터에서 접한 [트리비아 썰봇(@Cyp_Trivia_s)] 썰과 [블소 썰봇(@BnS_Sun_Talk)] 썰을 더해 만든 이야기.

기회가 된다면 이렇게 짧은 글이 아니라 좀더 구체적인 과정을 담은 단편으로 다시 재구성해보고 싶은 글입니다. 다이무스의 코드명은 BLADE, 그 칼을 쥐고 휘두르는 여제인 동시에 칼날을 감싸는 칼집 트리비아. 약간의 성적 은유도 가미해서.

07 돌이킬 수 없는(Naked): 느끼셨는지 모르겠지만 <칼집(Wating)>과 정서적으로 이어진 글입니다. 사람에게 전적으로 의지한 적 없을 것 같은 트리비아인데, 한 번 다이무스를 잃을 뻔했다는 경험이 자기에게 그가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하다는 사실을 일깨워주었을 것 같아요. 언제나 고고하고 도도한 트리비아이지만 유일하게 한없이 약해지고 기댈 수 있는 곳이 다이무스였으면 좋겠습니다.

08 수트로맨스 2(Suit Romance 2): 1탄의 뒤를 잇는 수트 로맨스 2탄입니다. 쓸 생각은 없었는데 우연히 트위터로 접한 아래의 사진이 마음을 거세게 뒤흔들어서 결국 쓰고야 말았습니다. 1탄은 읽으신 분은 아시겠지만 내용이 역시 미묘하게 이어져 있습니다. ‘여자에겐 남자의 수트, 남자에겐 여자의 란제리’라는 로망을 한 번에 아우르는 사진이지요.



그리고 당신의_상상력을_자극하는 _미방.jpg의 원본이기도 한, 요 멕구 님(사퍼닉: 체스터캔커피)♥께서 연성교환으로 그려주신 아래의 아름다운 다무틀비 그림은 아마 다이무스가 귀가한 뒤의 상황이 아닐까요. 훗훗훗. 



09 소원(Happy New Year): 두 사람만의 새해 인사. 일부러 대화만으로 두었습니다. 굳이 묘사나 설명을 덧붙이고 싶지 않았습니다.

10 태동(Womb): [Inspired by: 확인해볼까] 막 노골적인 바보 커플은 아니지만 충분히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낯 뜨겁게 만드는 구석이 있지 않을까요. 아, 그리고 뜬금없지만 트리비아가 햇빛에 부풀어오른 배를 비추는 장면은, 고구려 건국시조인 유화 부인이 알을 낳고서 이불을 덮어주고 양지바른 곳에서 품어주었다는 신화의 장면을 생각하며 썼습니다. 자궁하면 대표적인 여성 상징으로 음(陰)이 연상되지만 거기에 양(陽)을 보태 조화를 이룬다는 이미지. 여러분의 상상에 맡겨야 하는, 뒤에 이어질 장면도 음양의 조화지요. (히죽) 

- 주요서식지: 블로그(http://blog.naver.com/goastbaster) / 트위터(@winzs76) / 익명질문함(http://ask.fm/winzs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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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폐」[피터미쉘데샹] (http://cyphers.nexon.com/cyphers/article/art/topics/3763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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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름밤의 꿈」[올캐러/비정기 연재중] (http://cyphers.nexon.com/cyphers/article/art/topics/10394173)

「늑대와 소녀」[바레미쉘] (http://cyphers.nexon.com/cyphers/article/art/topics/11709858)

「lone」[드렉샬럿] (http://cyphers.nexon.com/cyphers/article/art/topics/13320328)

「동족혐오 外」[까미유&마틴 etc...]  (http://cyphers.nexon.com/cyphers/article/art/topics/13862360)


P.S. 

【무개념한 취향 무시 및 비난 댓글을 향한 하소연】


  댓글란에서, 특히 [오늘의 사이퍼즈] 댓글에서 발견되는 타커플링 발언에 관하여 참다참다 못해 오늘에야 말로 한 마디 하겠습니다.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는 커플링을 소위 '메이저'라고 하며 그만큼 매력적이기에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은 저도 잘 압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좋아한다고 해서 제가 반드시 그것을 좋아하라는 법은 없고, 인기는 없더라도 저 자신에게는 소중한 '마이너' 커플을 좋아할 수도 있는 겁니다. 그런데 메이저에서 벗어난 커플링 요소를 담은 그림이나 글을 보면 일부 생각없는 사람들이 "○○는 ○ 건데 뭐지" "물 밑 장르는 오싸 안 보내줬으면 좋겠다"하는 식의 발언이 아주 많이 보입니다. 그게 얼마나 불쾌한지 아십니까? 


특히 트리비아 관련 다른 커플링(대표적인 예: 마틴틀비)만 올라왔다 하면 "헐 트리비아 바람 피네" "트리비아가 루이스 말고 다른 남캐랑 엮이는 거 ㅈㄴ 싫음"이란 반응이 십중팔구 나오더군요. 이상하게도 루이스가 트리비아 말고 다른 캐릭터랑 엮이면 별 말 안 듣는데 말이죠. 이게 무슨 남녀차별적인 반응이란 말입니까. 루이틀비가 카인레나와 마찬가지로 사이퍼즈 공식 커플인 거 모르는 사람 없습니다. 하지만 공식커플이라고 반드시 좋아하라는 법 있나요? 루이틀비 저도 좋아해요. 그렇지만 루이스에 대한 언급없이 온전히 마틴틀비만 있는 게시물에까지 루이스가 언급되면 별로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더 기가 막힌 건 루이틀비에 대한 별 애정도 없는 사람들이 그저 '공식' 운운하며 타커플링을 무시하는 발언을 한다는 겁니다. 루이틀비를 좋아하는 사람은 공식이라서 좋아하는 게 아니에요. 그냥 그 자체로서 좋은 거고 공식이란 사실을 애정을 더 공고히 해주는 요소의 하나일 뿐이라고요. 


무엇보다 우리가 모든 2차 창작을 접할 때 기억해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2차 창작의 본질은 결국 패러렐입니다. 물론 공식세계관에 소개된 이야기를 그대로 나타낼 수도 있지만, 2차 창작의 가장 큰 장점은 '현재' 시점의 이야기뿐만이 아니라 '미래' 시점의 이야기를 창작자 나름대로 상상해서 표현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러니까 '또 다른 가능성'과 '아직 말해지지 않은 것에 말할 권리'인 셈이지요. 그러니까 아무리 인기 많은 커플링이 따로 있더라도 누구든지 그 커플링이 아닌 다른 커플링을 좋아할 자격과 권리가 있다는 겁니다. 당연히 자기가 메이저를 좋아하고 있다고 해서 마이너를 비난할 권리 같은 건 없습니다.


그러니까 제발 좀 남의 취향 좀 존중하며 삽시다. 싫으면 싫다고 개인 공간에서 뭐라 말하는 거야 본인 자유지만(물론 이 경우에도 싫다거나 이해할 수 없다는 표현까지만 가능하지 '그걸 왜 팜? 미친 거 아님?'이란 발언은 삼갑시다. 자기가 싫다고 그거 파는 사람 정신병자 취급하는 건 뭡니까), 엄연히 게시물을 올린 창작자가 보라고 만들어놓은 댓글란에 창작자의 취향을 깎아내리는 말은 적지 마세요. 그거 '나는 네가 내 댓글을 보고 불쾌한 기분에 휩싸였으면 좋겠어ㅋ'라는 식이 발언밖에 안 되거든요. 단 3초만이라도 그걸 읽어볼 사람의 마음을 배려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굳이 싫다는 말 하지 말고 침묵하고 [뒤로가기] 누르는 거, 그게 댓글 쓰는 것보다 훨씬 쉽잖아요.


특히 [팬픽]이라고 말머리가 떡하니 달려있는 글에다가 '길어서 안 봄' '한 줄 요약 좀' 이딴 식의 댓글 정말 상처입니다. 이제까지 제가 아무 말도 안 했다고 해서 상처를 안 받은 줄 아십니까? 그저 상대하기 하찮다고 생각해서 내버려뒀을 뿐이지요. 하지만 이제 안 참으려고요. 이보세요, 글 뒤에 사람 있습니다. 저는 그저 당신들에게 최소한의 예의를, 침묵을 바랄 뿐입니다. 제발 침묵해주세요. [사일런트 나잇!]



추천, 감상 댓글, 읽은 흔적 진짜진짜 좋아해요오오오...( m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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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레이디 YES NO 내 맘 알지? 성공! 뜨헉! 하아? 힝-
좋구나~ 후후후... YES NO 하- 감히! 이녀석들! 그땐 그랬지
Hi~ OK Oh! 냠~ Love U~ 궁금해! YES! 히힛~
안녕하십니까? 예~예~ 모든 것은 신의 뜻... 불허합니다. 의외군요. 나 원 참... 시작할까요? 강화인간!!
안녕? OK 궁금하네요. 역시! 재미있네. 깜짝이야! 아~니? ...
웃음 두려움 만족 놀람 동의 분노 좌절 인사
안녕하세요? 넵!! 미안해요!! 앗! 좋아요! 엣헴. 추천! ㅠㅠ
안녕하심까~ 피- 좋다! 못마땅해... 곱다~ 덤비라! 후우- 아슴찮다..
허~허~ 아, 아니... 헐! 흠흠... 끄응... 시, 식은땀이.. 엥? 후어어..
후훗~ Trick or Treat! 사.탕.내.놔. 소녀... 억울하옵니다... 사, 사탕 주세요! 해피... 핼러윈... 날 위해 사탕 정돈 줘야지? 목표? 당연히 사탕이지!
안녕~ ?? 피- 어머! 흐어 오오- 안돼! 랄랄라
우쭈쭈 하하 하? ?? 이거 참... -_- 안녕하십니까 안됩니다
ㅇㅅㅇ 으르릉... 나, 나! (정색) 깔깔 아니야!! 뿌잉 메~
안녕하십니까! 흐응? 흐으으응?! 척! 칫.. 좋-았어! 엥? 후에엥-!!
칫 엄숙하고 근엄하고 진지하다 믿습니다 내 안의 ...가 깨어난다 영업 중 할많하않 충격! 공포! 둠칫 둠칫 두둠칫
파이팅!! 고마워~ 졌어... 히힣 극대노 미안! 거울 앞에서 자의식 과잉된 십대 라이언
저는 지금 극공입니다. 훠이훠이 하.하.하. 매우 화가 납니다. 총기 손질중입니다. 저와 한 판 붙어보시겠습니까? 당신에 대한 정확한 진단 안돼!
뭐가 궁금하죠? 축하드립니다. 너에게는 뭐든 주고 싶어. 칭찬 드립니다. 대-단하십니다. 내겐 보여, 너의 죽음 당신을 믿습니다. 이런 미래는 싫어!
감사합니다. 기쁩니다. 축하합니다. 칭찬해 드리죠. 놀랍군요. 심기가 불편합니다. 충격을 받았습니다. 매우 화가 나는군요.
짝.짝.짝.짝 고마워... 멋있어... 지금 이게 뭐하시는 거죠? 대다나다 히에엑... 헉! 깜짝 놀랐습니다. 그만해!!!!!
옳소! 감탄했습니다. 흐음 후회할거요! 감사합니다. 놀랐습니다. 충격을 받았습니다.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정색) 축하드립니다. 칭찬해 드립니다. 놀랍군요. 매우 화가 나네요. 큰 충격입니다. 놀랍군요.
이럴수가... 감히! 네가! 아니?! 장하군! 응?! 좋다! 그건 아니다! 고맙다!
감사합니다 잘 못 들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매우 화가 나는군요 가슴이 두근거리네요 좌절상태입니다 감탄했습니다 칭찬합니다
멋지군! 좋았어! 하하! 축하하오! 아아.. 5분전인데. 커피한잔 하겠소?
승리의 정유년! 정의로운 새해복! 극.한.공.성. 복! 받아랏! 음~ 직장인의 정석
많이 배웠습니다! 대단합니다! ?!! 축하드립니다 뭔가.. 부족해요 짝짝짝! 각오하세요! 으윽!
성탄의 축복을~! 메리 X-MAS~! 화이트 크리스마스야 해피~ 크리스마스~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성탄이구나~
Good! Thank U Missing U Useless It's pretty good Oops WHY! Please wait
멜빈 미이라와 고스트 제피 할로윈에는 카를로스호박 히카르도의 사탕 탄야의 마녀 분장..? 잭-슈타인 강시 루시
기자님의 감탄사 : 호-오! 기자님의 일과 : 신문 보기 기자님의 사과 : 이거 실례! 기자님이 놀라면 : 어이쿠! 기분이 좋아 보이는 잭 기분이 나빠 보이는 잭 천진난만한 잭 상큼한 인사를 날리는 잭
좋군요! 좋은 시간 되소서 Merry 추석~! 우와~! 호~오! 가득해요~! 짱인데! 품위있군
Chu~♡ 파이팅! 우와앙.. 졌어 ㅠㅠ 이겼다! 흐~음? 뜨헉! 돼.. 됐거든! 사.. 살쪘..!
훌륭합니다 궁금하네요 에구머니나! 슬프네요... 경멸스럽군요.. 후훗~ 뭐라고 하셨죠? 이, 이럴수가...!
아이작의 멋진 모습 이글이라 샤샤샤~ 트리비아 슬라이딩 시바 포는 달린다 까미유도 달린다 라이샌더 달린다 마를렌 점프! 샬럿 점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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